역사

예수는 실존했는가, 아니면 만들어진 신화인가?

OUTNUMBERED 2025. 3. 7. 13:47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실존 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실존 했는가?

 

성경은 예수가 실존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도 그리스도교인은 전체 인구의 약 27%(개신교+천주교)에 달하며, 도심 곳곳에서 교회와 성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예수를 역사 속 실존 인물로 믿는다. 하지만, 예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역사적 증거는 무엇을 말하는가?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점에 거의 의견이 일치한다. 퍼듀대학교 도서관학(정보와 자료의 수집, 정리, 보존, 제공 등을 연구하는 학문) 부교수이자, 『Biblical Archaeology Review』(2015)에서 예수 관련 '성경 외 사료'를 다룬 로렌스 미키튜크는, 심지어 고대 시대에도 예수의 실존 자체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던 사실임을 지적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싫어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조차 예수를 '마법을 쓰는 사람',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했지만, '예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학자들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일부 학자들은 성경 기록이 역사적 근거(historical backbone)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며, 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들은 성경 이외의 역사적 기록에서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의 실존의 뒷받침할 만한 물리적 증거는 존재하는가?

예수의 실존을 확정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물리적, 고고학적 증거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퍼듀대학교 부교수인 로렌스 미키튜크

"결정적인 증거는 없고, 애초에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농민이었던 예수가 눈에 띄는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은 매우 작다"라고 말한다.

 

퍼듀대학교 부교수 "로렌스 미키튜크"
퍼듀대학교 부교수 "로렌스 미키튜크"

 

 

『예수는 존재했는가? 나사렛 예수에 대한 역사적 논증』의 저자이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종교학 교수 바트 D. 어맨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예수가 살았던 시기와 장소에 관해 남아 있는 고고학적 기록 자체가 거의 없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 인구의 99.99%가 그랬듯이, 고고학적으로 확인할 만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을 뿐이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교수 "바트 D.어맨"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교수 "바트 D.어맨"

 

예수와 직접 관련되었다고 전해지는 유물들, 예를 들어 십자가형 때 예수의 머리에 씌워졌다고 전해지는 가시관(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소장 추정)이나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천으로 알려졌으며 예수의 얼굴 형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고 전해지는 토리노의 수의 등은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고학은 예수와 관련된 신약성서의 일부 내용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증거들을 제시한다. 일례로, 예수의 어린 시절 고향으로 성경에 언급되는 나사렛(현재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도시)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고고학 조사를 통해 바위를 깎아 만든 안뜰이 딸린 가옥, 무덤, 저수조 등이 발견되면서 실제 존재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처형 방식으로 묘사된 로마의 십자가형이 고대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 역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확보되었다. 물론 이러한 발견들이 예수의 실존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묘사된 시대적, 배경적 사실들이 허구가 아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신약성서 밖 기록, 예수의 흔적을 찾아서

1세기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서기 37년경~100년경)는 서기 93년경 20권에 달하는 방대한 역사서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유대 민족의 기원부터 로마 제국에 대항한 전쟁까지를 다룬 역사책)를 썼는데, 이 책에서 예수를 두 번 언급한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종교학 교수 바트 D. 어맨은 요세푸스를 두고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1세기경 집필된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1세기경 집필된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지 불과 몇 년 뒤 태어난 요세푸스는 팔레스타인의 유력 가문 출신 군인이었다. 그는 66~70년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갈릴리 지역 사령관을 맡기도 했다. 요세푸스 자신은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초기 교회가 막 생겨나던 시기에 그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직접 보았거나 그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들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퍼듀대학교 도서관학 부교수이자 성서 고고학 전문가인 로렌스 미키튜크는 설명한다.

 

『유대 고대사』에는 한 불법적인 처형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요세푸스는 희생자인 야고보를 "메시아라고 불리는 예수의 형제"라고 칭한다. 이 짧은 구절은 학계에서 대체로 진짜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를 좀 더 길게 다룬 "테스티모니움 플라비아눔(Testimonium Flavianum, '플라비우스의 증언'이라는 뜻)" 이라는 구절은 논란이 많다.이 구절은 『유대 고대사』 제18권에 나오는 한 단락으로, 예수를 "지혜로운 사람", "놀라운 일들을 행한 자"로 묘사하고, 그가 "그리스도"였으며, 폰티우스 필라투스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했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고 전한다. 미키튜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이 문장 전체가 후대에 그리스도교인에 의해 조작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표현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로마 제국사 『연대기(Annals)』에서 찾은 예수의 흔적

예수에 관한 또 다른 중요한 기록은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역사가인 타키투스(Tacitus, 서기 56년경~120년경)가 서기 116년경 저술한 로마 제국사 『연대기(Annals)』에서 찾을 수 있다. 타키투스는 서기 64년에 발생한 로마 대화재를 기술하면서, 네로 황제가 "크리스투스(Christus,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크리스티아니(Christiani, 기독교도)'라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던 이들에게 방화 누명을 씌웠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그 '크리스투스'가 티베리우스 황제 재임 시절 유대 총독 (유대 총독"은 로마 제국 시대에 유대 지역(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했던 로마 제국의 관직을 말한다) 폰티우스 필라투스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덧붙인다.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역사가인 타키투스가 저술한 로마 제국사 『연대기(Annals)』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역사가인 타키투스가 저술한 로마 제국사 『연대기(Annals)』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종교학 교수 바트 D. 어맨은 "타키투스는 로마의 역사학자로서 기독교에 호의적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기록이 신약성서가 전하는 기독교 박해와 예수의 처형에 대한 내용과 사실상 일치한다고 말한다. "기독교와 그 미신을 경멸하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서술했음에도, 예수가 폰티우스 필라투스에 의해 처형됐고 그의 추종자들이 후에 종교 운동을 일으켰다는 점은 신약성서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퍼듀 대학교 부교수인 미키튜크 역시 타키투스의 기록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타키투스는 역사서를 쓰면서 정보가 불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독자들에게 경고성 표현을 남기곤 했는데, '크리스투스' 관련 부분에는 그러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판적인 시각: 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학계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예수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거나, 신약성서에 묘사된 예수의 모습이 여러 신화적 요소들을 덧붙여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라는, 이른바 '예수 신화론'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예수 신화론자들은 우선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에서 예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그 진위가 의심스럽다는 점을 지적한다. 1세기 로마나 유대 자료에서 예수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된 타키투스나 요세푸스의 기록 역시 후대에 기독교인들에 의해 내용이 삽입 또는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한, 신약성서의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때로는 모순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서로 다르게 묘사하고 있으며, 등장인물과 세부 내용에서 차이를 보인다. 예수의 족보 역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서로 다르게 제시하고 있어, 어느 쪽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예수의 부활 후 행적에 대해서도 복음서마다 묘사가 달라, 부활 후 첫 번째로 누구에게 나타났는지, 어디에서 제자들을 만났는지 등에 대한 일관된 설명을 찾기 힘들다.

 

더 나아가, 이들은 예수의 탄생, 기적, 죽음, 부활 등의 이야기가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페르시아 종교 등 다른 신화나 종교의 이야기들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스, 이집트 신화의 호루스 등 여러 신화 속 영웅들의 탄생 설화와 유사하다. 물 위를 걷거나 폭풍을 잠재우는 등의 기적은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이나 오리온 등의 신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모티프는 오시리스, 아티스, 디오니소스 등 '죽었다가 부활하는 신'이라는 고대 신화의 전형적인 패턴과 연결된다.

 

더욱이, 초기 기독교는 자신들이 이단으로 규정했던 종교나 신화의 요소들을 차용하여 기독교 교리와 의식에 편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는 원래 로마의 농경신 축제일(Saturnalia)이었고, 부활절은 5세기경 브리타니아(현재의 잉글랜드)로 이주해 온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의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Ēostre) 또는 오스타라(Ostara)를 기리는 축제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예수 신화론자인 로버트 프라이스(Robert M. Price)는 저서 『Deconstructing Jesus』에서 예수의 생애에 대한 복음서 이야기가 대부분 허구이며, 설령 역사적 예수가 실존했더라도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복음서 이야기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물이며,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끝나지 않은 논란

한국에서도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은 물론, 종교가 없는 이들 사이에서도 "예수가 정말 실제 인물이었을까?"라는 질문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대 문헌과 일부 역사적·고고학적 단서들은 예수라는 인물이 역사 속에 실존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예수의 신성이나 그가 행했다고 전해지는 기적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진위 여부는 여전히 믿음의 영역에 속하며, 역사적·과학적 방법만으로는 완전히 증명하거나 반증하기 어렵다.

 

예수의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은 단순히 '실화'냐 '허구'냐를 가리는 이분법적인 문제를 넘어선다. 이 논쟁은 역사, 고고학, 신학, 종교학, 철학, 문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를 통해 더욱 심층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복잡한 문제이다. 앞으로도 이 논쟁은 계속될 것이며, 새로운 증거의 발견과 해석에 따라 기존의 견해가 수정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관점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고, 건설적인 토론을 통해 더 나은 이해에 도달하는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