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부) 기록으로 되짚어 본 기묘하고 위험했던 과거의 의료행위들

OUTNUMBERED 2025. 4. 24. 12:20

17세기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치료했다는 "흑사병 의사" 의사보다는 방술사에 가까웠다.
17세기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을 치료했다는 "흑사병 의사" 의사보다는 방술사에 가까웠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현대 의학의 눈부신 혜택 뒤에는 질병과 싸워온 인류의 길고 험난한 역사가 숨 쉬고 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때로는 미신과 방술에 의존해야 했던 시절,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방식으로 병마와 싸웠다. 불과 10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심지어 고대 문명의 기록 속에서도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때로는 경악스럽기까지 한 치료법들이 버젓이 존재했다. 동물의 배설물이나 신체 일부는 물론, 독성을 지닌 식물과 광물까지 약으로 쓰였다. 때로는 효과는 커녕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시술마저 진지하게 권장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록들은 당시 의학 지식의 명백한 한계와 질병 앞에서 인간이 느꼈을 절박함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제 고대부터 근대 의학의 기틀이 잡히기 시작한 20세기 초까지, 인류가 질병을 다스리기 위해 실제로 사용했던 기상천외하고 때로는 섬뜩한 치료법 25가지를 살펴본다. 이러한 과거의 사례들은 병 앞에서 분투했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봄과 동시에, 과학과 논리에 기반한 현대 의학이 얼마나 값진 성취인지 깨닫게 하는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1. 날고기로 광견병 치료

고대 로마의 저명한 박물학자이자 정지가였던 플리니우스의 저서 "Naturalis Historia" 박물지.
고대 로마의 저명한 박물학자이자 정지가였던 플리니우스의 저서 "Naturalis Historia" 박물지.

 

예나 지금이나 광견병은 한번 증상이 발현하면 거의 100%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신경계를 침범해 끔찍한 고통과 이상 행동을 유발하는 이 병 앞에서, 고대 로마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환자를 살리고자 했을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고대 로마의 저명한 박물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AD 23~79)가 남긴 방대한 저서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연구한 박물학이란 당시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과 현상, 즉 동식물, 광물부터 지리, 천문, 의학 등 인간과 자연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하여 관찰하고 기술하는 백과사전적 학문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 『박물지』에 당대 지식과 민간요법을 기록했는데, 그가 기록한 광견병 치료법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굉장히 기괴하다.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치료는 먼저 미친 개에게 물린 상처 부위를 칼 등으로 째어 벌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어서 그 상처 위에 갓 잡은 신선한 송아지 생고기를 두툼하게 덮어 놓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환자는 이후 철저한 식이요법을 따라야 했는데, 허용된 음식은 놀랍게도 라임(lime)과 돼지기름뿐이었다. 영양 불균형은 물론이고, 상처 치유에도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기이한 식단이다.

 

치료의 마지막 단계는 아주 혐오스럽다. 삶은 오소리 똥을 구해 와인과 섞어 마시는 것이다! 플리니우스는 이 모든 끔찍하고 비위생적인 과정을 충실히 따르면 치명적인 광견병도 완치될 수 있다고 기록했다. 질병의 원인이나 감염 경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 절박함 속에서 탄생한 비과학적 믿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2. 삶은 당근으로만 구성된 식단으로 천식 증상 완화

18세기 영국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이자 종교 지도자 중 한명인 "존 웨슬리" 경
18세기 영국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이자 종교 지도자 중 한명인 "존 웨슬리" 경

 

영국 감리교(Methodism) 운동의 창시자이자 18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 중 한 명인 존 웨슬리 경은(1703-1791) 영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당대 서민들의 건강과 복지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그가 1747년에 저술한 의학 서적(원시 의술)에 잘 나타난다.

 

이 책은 당시 의학의 혜택에 사각지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 특히 값비싼 의사의 진료나 약을 구하기 어려운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였다. 웨슬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허브, 식료품 등을 이용한 간단하고 저렴한 민간요법들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제공했다. 책은 큰 성공을 거두어 웨슬리 생전에만 20판 이상 인쇄될 정도로 널리 읽혔다.

 

수많은 질병에 대한 나름의 처방을 제시한 이 책에서, 웨슬리는 만성적인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천식(Asthma)에 대해서도 파격적인 해결책을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2주 동안 오직 삶은 당근만 먹는 것"이다. 다른 어떤 음식도 허용되지 않는, 극도로 제한적인 이 식단을 통해 천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왜 하필 당근이었을까? 당근이 가진 어떤 성분이 천식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특정 음식을 제한하는 행위 자체에 정화나 치유의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 처방은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다. 기관지 염증과 기도 수축이라는 천식의 복잡한 발병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 어떻게든 고통받는 이들을 돕고자 했던 종교 지도자의 신념과 당시 의학적 지식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3. 전기 충격으로 치통 치료

18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검증되지 않은 "전기요법" 같은 의료행위가 성행하던 시대였다.
18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검증되지 않은 "전기요법" 같은 의료행위가 성행하던 시대였다.

 

18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전기' 열풍에 휩싸였다. 강력한 정전기를 인공적으로 만들고 제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이 보이지 않는 힘의 무한한 잠재력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이 신비로운 에너지라면 생명의 비밀을 푸는 것은 물론, 당시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던 수많은 질병까지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전기가 신경과 근육을 자극하고, 마치 막힌 곳을 뚫듯 몸속 체액이나 '기(氣)'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아주고 질병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은 '의료 전기(Medical Electricity)' 또는 '전기 요법(Electrotherapy)'이라는 이름 아래 순식간에 유럽과 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 새로운 치료법은 그야말로 만능 해결사처럼 여겨졌다. 지긋지긋한 치통을 잠재우는 데 전기 충격이 특효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실제로 치아나 턱 주변에 직접 전기를 흘려보내는 시술이 행해졌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발작을 동반하는 간질이나 몸이 마비되는 중풍 같은 심각한 신경계 질환에도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전기 요법의 적용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몸속 기생충을 박멸하거나, 원인 모를 무기력증이나 남성의 성기능 부전(임포텐스)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심지어 특별한 질병이 없어도 단순히 건강을 증진하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목적으로 전기 자극을 받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공개적인 전기 요법 시연회는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고, 이를 이용하여 부를 쌓으려는 의사나 효과를 과장하는 사기꾼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열광적인 분위기와 달리, 대부분의 경우 전기 요법의 치료 효과는 과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전기의 세기나 적용 시간을 제대로 조절할 기술도 부족했기에, 치료는 고사하고 오히려 환자에게 화상이나 또 다른 충격을 줄 위험마저 존재했다.

 

18세기의 전기 요법 열풍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대한 흥분과 기대, 그리고 질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류의 오랜 염원이 뒤섞여 만들어낸, 흥미로우면서도 위태로운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4. 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를 이용한 지혈법

황당했던 과거의 코피 치료: 뻘겋게 달군 쇠붙이로 지혈?
황당했던 과거의 코피 치료: 뻘겋게 달군 쇠붙이로 지혈?

 

지금이야 코피가 나도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간단한 응급 처치로 해결되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특히 잦거나 심하게 코피를 흘리는 경우, 그 원인을 알 수 없었기에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공포와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당시 의학의 핵심 이론 중 하나는 '체액설'이었다. 우리 몸 안의 몇 가지 중요한 액체(체액)가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하다는 믿음이다. 이런 생각에 따라, 코피가 나는 것 역시 체액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보았고, 그 균형을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때로는 매우 극단적인 방법들이 실제로 사용되었다.

 

그중 하나는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방법이다. 바로 뻘겋게 달군 쇠붙이를 코피가 나는 부위 근처에 가져다 대는 것이다. 이는 뜨거운 열로 피 나는 곳을 지져서 억지로 출혈을 멈추려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방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가 나는 정확한 혈관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을 뿐더러, 이런 무모한 시도는 끔찍한 고통과 함께 심각한 화상 및 감염의 위험까지 불러왔을 것이다.

 

또 다른 기이한 처방으로는 "식초에 적신 천 조각을 태운 연기를 깃펜(quill)이나 얇은 빨대 같은 도구를 이용해 콧속으로 불어넣는 것"이 있었다. 식초의 산성 성분이나 연기 자체가 혈관을 수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믿었거나, 혹은 단순히 강한 자극으로 다른 감각을 압도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그 효과는 불확실하며, 환자에게는 매우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더해,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질병 치료에 만능처럼 사용되었던 사혈 역시 코피를 멈추는 데 동원되었다. 여기서 사혈이란 병의 치료를 위해 피를 뽑아내는 시술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20세기 초반까지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몸속의 '나쁜 피'나 '과도한 피'를 제거하여 체액의 균형을 되찾으면 코피 같은 출혈 증상도 자연히 멈춘다는 논리였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전혀 타당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던 이 위험한 시술이 코피 같은 비교적 사소해 보이는 증상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의학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처럼 과거에는 출혈의 정확한 원인과 효과적인 지혈 방법을 몰랐기에, 때로는 고문에 가까운 고통스럽고 위험천만한 방법들이 코피를 멈추기 위한 진지한 치료법으로 여겨졌다.


5. 말라리아 치료엔 ‘아브라카다브라’ 주문

지독한 고열과 오한으로 환자를 극심한 고통에 빠뜨리는 말라리아는 고대부터 인류를 괴롭혀 온 대표적인 감염병이었다. 모기나 병원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시절, 사람들은 이 무서운 열병의 원인을 '나쁜 공기(mal aria)'나 초자연적인 힘 탓으로 돌리곤 했다. 그렇다면 과거 의사들은 이 병에 어떻게 맞섰을까?

 

3세기 로마의 의사이자 작가였던 퀸투스 세레누스 삼모니쿠스가 시의 형식으로 저술한 책 (Liber Medicinalis) 에 흥미로운 말라리아 처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약이나 시술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주술에 가깝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이렇다. 먼저 종이에 'ABRACADABRA'라는 글자를 적는다. 첫 줄에는 온전하게 다 쓰고, 다음 줄부터는 마지막 글자를 하나씩 지워나가 마지막 줄에는 'A' 하나만 남도록 삼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마치 주문의 힘이 점점 응축되는 듯한 모습이다.

ABRACADABRA 
ABRACADABR 
ABRACADAB 
ABRACADA 
ABRACAD 
ABRACA 
ABRAC 
ABRA 
ABR 
AB 
A

 

이렇게 만든 부적을 천에 싸서 9일 동안 목에 걸고 다닌다. 그리고 9일째 되는 날, 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찾아 뒤돌아 서서 말없이 부적을 물속에 던져 버린다. 여기에는 글자가 점차 줄어들듯이 병의 기세도 따라서 약해지고, 흐르는 물이 병을 멀리 씻어가 주리라는 주술적인 믿음이 담겨 있다. 이는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결과를 부른다'는 생각에 기초한 유감 주술(sympathetic magic)의 한 예로 볼 수 있는데, 동쪽이나 흐르는 물, 9라는 숫자 역시 주술적인 의미를 더했을 것이다.

 

만약 부적의 힘이 통하지 않았을 때를 위한 '플랜 B'도 마련되어 있었다. 바로 사자 기름을 온몸에 바르는 것이다. 강력한 힘의 상징, 사자의 정기를 통해 질병을 이겨내고자 했던 의도로 보인다.


6. 사람 머리카락 + 사슴 뼈 가루로 간질 완화

갑작스러운 발작과 함께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간질(Epilepsy)은 예로부터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큰 고통과 두려움을 안겨주는 병이었다. 뇌 기능의 문제라는 것을 알 턱이 없던 옛사람들은 간질을 종종 신의 형벌이나 악령의 소행으로 여겼고, 다양한 주술적 방법으로 치료하고자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처방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힘이 센 남자의 머리카락'과 '사슴의 다리뼈'를 함께 솥에 넣어 푹 끓인 다음, 건조시켜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루를 환자는 매일 꾸준히 복용해야 했는데, 중요한 것은 반드시 '초승달이 뜨기 전까지만' 먹어야 한다는 엄격한 시간 제약이었다.

 

이 기묘한 처방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먼저, 발작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강인한 힘과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힘센 남자의 머리카락에서 '강함'을, 잘 넘어지지 않는 사슴의 뼈에서 '민첩함과 안정감'을 얻어 환자에게 전달하려 한 것이다. 즉, 강한 존재의 일부를 먹거나 몸에 지니면 그 좋은 특성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주술적인 믿음이 깔려 있었다.

 

복용 시기를 초승달 이전으로 제한한 것 역시 우주의 질서와 인간 건강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믿었던 고대인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달의 차고 기우는 주기가 인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던 그들에게, 어둠이 시작되는 초승달은 질병의 악화나 재발과 관련된 위험한 시기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새로운 달의 어두운 기운이 시작되기 전에 치료를 완료하여 발작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현대 신경과학은 간질이 뇌 신경세포의 비정상적 활동으로 인한 것임을 명확히 밝혔고, 달의 위상 변화와 발작 빈도 사이에는 어떠한 과학적 연관성도 없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의 처방전은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질병을 이해하고 통제하고자 했던 인류의 오랜 노력의 흔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7. 죽은 사람 손과 성경책으로 손목낭종 치료

18세기 독일의 해부학자이자 외과의사였던 로렌츠 하이스터.
18세기 독일의 해부학자이자 외과의사였던 로렌츠 하이스터.

 

18세기 독일의 저명한 해부학자이자 외과의사였던 로렌츠 하이스터(Lorenz Heister, 1683-1758)가 활동하던 시기는 새롭게 대두되던 과학적 방법론과 방술에 가까운 민간요법들이 기묘하게 공존하던 시기였다. 1743년 그가 제안한 손목 낭종 치료법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넌센스에 가깝지만, 당시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던 의학적 처방이었다.

 

하이스터는 손목이나 관절 부위에 자주 생기는 물혹, 즉 낭종(ganglion cyst)을 치료하기 위해 두 가지 특이한 방법을 기록으로 남겼다. 첫째는 동물을 사냥할 때 사용하는 납 탄환을 낭종 부위에 대는 것이었고, 둘째는 더욱 기이하게도 '최근에 죽은 사람의 손'으로 해당 부위를 문지르거나 접촉시키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처방의 이면에는 당시 유럽 사회에 만연했던 죽음과 생명 사이의 신비로운 연결성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죽은 자의 손에 질병을 옮기거나, 죽음의 기운으로 병을 쫓아낸다는 관념은 중세 이래로 민간요법에서 자주 등장했던 치료 개념이었다. 특히 죽은 자의 손은 죽음의 힘을 지닌 물체로서, 비정상적 성장물인 낭종을 흡수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보다 더 널리 퍼진 치료법은 두꺼운 성경책으로 낭종을 강하게 내리치는 방식이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낭종 내부의 액체를 파열시켜 흡수되게 하는 이 방법은 단순하면서도 때때로 효과적이었기에 18세기를 넘어 20세기 초반까지도 민간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이 독특한 치료법은 의학사에 깊은 족적을 남겨 오늘날까지도 손목 낭종을 일컫는 'Bible bump' 또는 'Bible cyst'(바이블 낭종)이라는 별칭의 유래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성경으로 내리치는 행위에는 단순한 물리적 충격 외에도 종교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의 말씀이 담긴 성스러운 책으로 병을 내리친다는 것은 악한 기운이나 병마를 쫓아내는 종교적 의식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즉, 물리적 치료와 영적 치료가 결합된 형태였던 셈이다.

 

현대 의학은 낭종이 관절 주위 활액낭 (관절·힘줄·인대가 마찰 없이 움직이도록 윤활액을 담고 있는 작은 주머니)이 과도하게 팽창해 생기는 양성 종양임을 밝혀냈다. 대다수는 자연적으로 사라지며, 필요하면 비교적 간단한 절개로 쉽게 제거된다. 과거 성경책으로 내리치는 충격요법이 간혹 효과를 보였던 것은 우연히 낭종을 파열시켜 내용물이 피부 밖으로 새지 않고 주변 연부 조직 사이로 퍼져 림프·면역계에 의해 서서히 흡수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액체가 몸속으로 흩어져 자연 분해된 셈이다. 이는 동시에 주변 조직 손상과, 감염, 그리고 재발 위험을 높이는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다.


8. 환각 그리고 맹독성 물질이 포함된 천식 담배

19세기 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천식담배"
19세기 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천식담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밤잠을 설치게 하는 천식. 오늘날에는 증상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흡입기가 널리 쓰이지만, 이것이 개발되기 전인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천식 환자들은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양한 치료법에 매달렸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등장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이 바로 '천식 담배(Asthma cigarettes)' 다. 숨을 편히 쉬기 위해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가 모순처럼 들리지만, 당시 천식 담배는 의사의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엄연한 '치료제'로 여겨졌다. 많은 환자들이 실제로 이 담배를 피우고 일시적으로나마 호흡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기묘한 담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었을까?

 

놀랍게도 천식 담배의 핵심 성분은 독말풀, 벨라돈나와 같이 예로부터 독초나 환각제로 알려진 식물들이었다. 이 식물들에는 아트로핀, 스코폴라민과 같은 알칼로이드 계열의 화학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 물질들은 신경 전달을 차단하여 기관지 근육을 이완시키고 기도를 넓혀주는 효과(항콜린 작용)가 실제로 있다.

 

즉, 환자들은 담배 연기를 통해 이 알칼로이드 성분을 흡입하면서 일시적으로 기도가 확장되어 숨쉬기가 수월해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이것이 천식 담배가 '효과 있다'고 여겨진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착각이었다. 해당 식물들은 이름처럼 맹독성을 지니고 있어, 조금만 잘못 사용해도 심장 박동 이상, 환각, 정신 착란, 혼수 상태,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게다가 담배 형태로 만들어 피우는 방식 자체가 문제였다.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겠다며 연기를 폐로 직접 흡입하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폐 건강에 치명적이었으며, 종종 천식 담배에는 이 독초들 외에 일반 담배(tobacco)까지 혼합되어 니코틴 중독의 위험까지 더해졌다.

 

결국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알칼로이드 성분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고, 에피네프린 흡입기와 같은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천식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천식 담배는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숨 막히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독초 연기에 의지해야 했던 '천식 담배'의 존재는, 질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의 절박함과 위험천만했던 치료법의 역사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1부) 기록으로 되짚어 본 기묘하고 위험했던 과거의 의료행위들

(2부) 기록으로 되짚어 본 기묘하고 위험했던 과거의 의료행위들

(3부) 기록으로 되짚어 본 기묘하고 위험했던 과거의 의료행위들

(완) 기록으로 되짚어 본 기묘하고 위험했던 과거의 의료행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