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섹스 심볼이자 대중문화의 상징이었다. 금발과 매혹적인 미소, 어딘가 슬픔이 깃든 눈빛을 가진 그녀는 단순한 스타를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1950년대부터 60년대 초까지 그녀가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극장가는 열광과 기대감으로 들끓었다. 그러나 1962년 8월, 그토록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과 언론은 '약물 과다 복용'을 사망 원인으로 발표했지만, 사고인지 자살인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영화계와 대중은 그녀의 사생활과 주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놓지 못했다.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빛나던 여인이 왜 갑자기 무대 뒤로 사라져야 했는지에 대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온갖 음모론이 등장했다. 케네디 형제와의 스캔들, 마피아와 CIA의 개입설, 심지어 UFO와 관련된 주장까지 나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음모론들이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릴린 먼로가 남긴 문화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전설로 남은 그녀의 죽음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 전 상황
시간을 돌려 마릴린 먼로가 생을 달리한 1962년, 마릴린 먼로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불과 일년 전 세 번째 남편이었던 극작가 아서 밀러와 이혼했고, 결혼 생활 동안 세 번의 유산을 겪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1960년 영화 'Let's Make Love'와 1961년 'The Misfits'가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마릴린 먼로'라는 이름의 빛은 점차 바래져 갔다. 그녀의 입지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 사건은 그녀가 1962년 5월, 영화 'Something's Got to Give' 촬영 중 잦은 불참으로 스튜디오와 갈등을 빚은 끝에 해고당한 것이었다. 20세기 폭스는 그녀의 불성실로 2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날렸다고 주장하며 50만 달러 소송을 제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먼로는 점점 세상과 담을 쌓았고, 마지막 몇 달은 로스앤젤레스 자택에 거의 칩거하며 지냈다. 그러나 완전히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먼로는 숨지기 며칠 전, 자신을 해고했던 바로 그 스튜디오와 다시 손을 잡고 영화 두 편을 더 찍기로 계약을 맺었다. 보도에 따르면 계약금은 100만 달러에 달했다. 사망 직후 월요일에는 'Something's Got to Give' 촬영장에 복귀할 예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8월 5일 새벽, 그녀는 갑작스럽게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었지만, 곧 '자살'로 결론지어졌고, 8월 6일자 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전했다. 마릴린 먼로는 진짜 자살을 기도했을까? 이제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회자된 음모론과 다양한 가설들을 하나 하나 정리해 보려고 한다.
로버트 F. 케네디가 불륜을 덮기 위해 마릴린 먼로를 죽였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즉각적으로 무수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2년 뒤, 우익 성향의 작가 프랭크 카펠이 "먼로가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그의 동생인 법무장관 로버트 F. 케네디와 동시에 염문을 뿌렸다"는 소문을 바탕으로 1964년 저서 'The Strange Death of Marilyn Monroe'를 통해 "로버트 F. 케네디가 먼로를 살해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음모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카펠은 책에서 먼로가 케네디 형제와 동시에 관계를 가졌으며, 로버트 케네디가 이를 숨기기 위해 먼로를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재까지 명확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로버트 F. 케네디가 먼로를 죽인 이유는 그녀가 케네디 가문에 관한 비밀 정보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륜설과 상반되게 로버트 F. 케네디에 대한 또 다른 음모론이 등장했다. 1975년 기자이자 음악 저널리스트였던 앤서니 스카두토가 성인 잡지 Oui에 기고한 “누가 마릴린 먼로를 죽였는가”에서 로버트 케네디가 먼로 살해의 배후로 지목되었지만, 이번에는 동기가 불륜 은폐가 아니라 '민감한 정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먼로가 케네디 가문 관련 비밀을 일기장에 써놓았고, 이를 폭로할 가능성을 감지한 로버트 케네디가 비극적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해당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일기장 등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않아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먼로의 죽음은 사고였지만, 로버트 F. 케네디와, 그의 처남 배우 피터 로포드가 진실을 은폐했다
1985년, 앤서니 서머스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방대한 저서 『여신』을 통해 먼로가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로 인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서머스는 먼로가 로버트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하자 로버트 케네디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로버트가 자신의 처남인 배우 피터 로포드를 시켜 이를 '뒤처리'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즉, 먼로가 8월 4일 밤 로버트와 로포드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살아 있었지만,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서머스는 이들이 경찰, 의료진, 심지어 FBI 국장과 결탁해 사건을 자살로 조작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앤서니 서머스는 마릴린 먼로 사망에 대한 심층적인 취재를 바탕으로 1985년 '여신'을 출간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9·11 테러 관련 저서로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는 등 저널리스트로서의 명망을 얻었지만, '여신'에서 제기된 음모론을 입증할 명확한 물증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약물을 항문으로 주입하는 과정에서 가정부와 정신과 의사가 마릴린 먼로가 죽었다
1993년 미국의 전기 작가 도널드 스포토는 저서 '마릴린 먼로: 전기'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먼로의 가정부 유니스 머레이가 불면증 치료를 위해 클로랄 하이드레이트 용액을 항문으로 주입하는 관장을 시행했는데, 이것이 먼로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클로랄 하이드레이트는 경구 투여도 가능하지만, 관장으로 투여할 경우 약물 흡수가 훨씬 빠르고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먼로가 이미 강력한 수면제인 넴부털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스포토는 먼로의 정신과 의사였던, 랄프 그린슨이 이 사실을 몰랐거나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두 약물은 함께 복용하면 심각한 상호작용을 일으켜 위험하며, 스포토는 이로 인해 먼로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더 나아가 스포토는 그린슨과 머레이가 "눈앞에 벌어진 재앙에 얼어붙어" 모든 것을 자살로 위장했다고 주장하며, 단순한 사고사를 넘어 의료 과실과 은폐 의혹까지 제기했다. 물론 스포토의 주장은 새로운 의혹을 불러일으켰지만, 진위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먼로의 사망 당시 상황을 아는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된 머레이와 그린슨뿐이기 때문이다. 스포토의 주장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CIA가 마릴린 먼로의 죽음에 연관되어 있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중에는 CIA 개입설도 있다. 2004년 작가 매튜 스미스는 저서 'Marilyn's Last Words'에서 CIA 내부의 '일탈 세력'이 1961년 발생한 피그스만 침공의 실패 후 케네디 형제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극을 계획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피그스만 침공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자들이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시도한 무장 침공으로,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스미스는 CIA 내 '일탈 세력', 즉 케네디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일부 요원들이 피그스만 침공 실패의 책임을 케네디 형제에게 돌리고, 먼로를 살해 후 자살로 위장해 케네디 형제 중 누구든 정치적 타격을 입게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CIA의 비밀 작전 수행 능력을 고려할 때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하지만,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에 시카고 마피아가 개입되어 있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에 마피아가 개입되었다는 설도 있다. 시카고 마피아 보스 샘 지안카나의 친척인 샘 지안카나와 그의 형제 척 지안카나는 1993년 출간한 저서 'Double Cross'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들은 "먼로의 스타덤 자체가 마피아의 힘으로 굴러가고 있었고, 그녀는 CIA를 위해 세계 지도자들을 유혹해 약점을 잡는 '비밀 무기' 역할도 했다"고 폭로했다. 시카고 보스가 네 명의 청부살인업자를 보내 먼로를 살해했는데, 이는 CIA의 의뢰이기도 하고, 케네디 형제에게 타격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먼로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자살 처리되었고, 케네디 가문을 망신 주려던 마피아 측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주장은 마피아의 영향력과 CIA의 비밀 공작 활동을 엿볼 수 있게 하지만,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UFO 때문에 먼로가 죽임을 당했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둘러싼 가장 기묘하고 초현실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UFO 관련설이다. 응급실 의사이자 UFO 연구가인 스티븐 그리어 박사가 이 의혹을 재기했는데, 그는 "우호적인 외계인들이 오래전부터 지구를 방문해 인류의 우주 무기 기술을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어 박사는 더 나아가 그가 CIA의 극비 문서를 입수했으며, 이 문서에 도청된 전화 통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통화 내용에 따르면, 먼로는 "JFK (존 F. 케네디)가 로스웰 UFO 추락 사건에 대해 자세히 말해줬다"며 이 사실을, 즉 JFK와 미국 정부 고위층에게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스트리밍 서비스 가이아(Gaia) 영상에서 그리어 박사는 "케네디는 먼로의 살해 사실을 알고 격분했지만, 암살 지시는 대통령 수준을 넘어서는 곳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즉, 케네디 대통령조차 어쩌지 못하는 '숨은 세력'이 먼로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일부 음모론 자들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 케네디 가문은 정말로 연루되어 있는가?
마릴린 먼로와 존 F. 케네디의 만남은 1961년, 배우 피터 로포드가 주최한 파티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터 로포드는 먼로의 오랜 친구이자 케네디 대통령의 처남이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44세로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고, 먼로는 35세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할리우드 스타였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고, 곧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갔다. 먼로의 매력에 푹 빠진 케네디 대통령은 그녀를 백악관으로 초대하기도 했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깊은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기혼이었고, 먼로와의 관계는 세간의 이목을 피하기 어려웠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 가지 못하고 끝났지만, 이들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스캔들로 이어졌고, 이는 먼로의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음모론의 불씨가 되었다. 먼로가 케네디 대통령과의 관계를 폭로하려 했다는 설, 혹은 케네디 가문이 스캔들을 막기 위해 먼로를 제거했다는 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 가문은 단순한 스캔들을 넘어 먼로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핵심적인 연결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이 모든 음모론은 저마다 다른 가정을 품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마릴린 먼로는 수많은 비밀과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다.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였고, 그녀의 죽음은 그 드라마의 가장 비극적인 클라이맥스였다. 어떤 설이 진실이든, 그녀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마릴린 먼로, 그녀는 그렇게 전설이 되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는 실존했는가, 아니면 만들어진 신화인가? (23) | 2025.03.07 |
---|---|
오펜하이머: 원자폭탄의 아버지'에 관한 5가지 충격적 사실 (29) | 2025.03.06 |
희대의 사기꾼, 그레고르 맥그레거: 가짜 나라를 팔다 (22) | 2025.02.22 |
하늘에서 사라진 남자: 희대의 비행기 납치 ‘D.B 쿠퍼사건 (26) | 2025.02.15 |
제2차 세계대전 후, 28년간 괌 동굴에 숨어 지낸 일본군의 이야기 (18) | 2025.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