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캐나다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미국 땅, "Point Roberts" 포인트 로버츠

OUTNUMBERED 2025. 1. 9. 13:52

"포인트 로버츠"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야?

20년도 넘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칠판 앞에 서서 국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졸린 눈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을 때, 선생님이 갑자기 물었다.

 

“야, 너희들 포인트 로버츠 들어봤어?”

“포인트… 뭐요?”

반 전체가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칠판 옆 지도 한쪽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여기야. 미국인데 캐나다에서만 갈 수 있는 미국 땅.”

우리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미국 땅인데 캐나다에서만 갈 수 있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가 국경선이야. 북위 49도선. 1846년에 영국이랑 미국이 이 선을 기준으로 국경을 나눴거든. 근데 여기,”

그가 가리킨 점은 작았다. 어찌나 작았던지 거의 안 보일 정도였다.

“이 작은 점 하나가 미국 땅으로 남게 된 거야.”

내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그냥 위치상 캐나다로 합치지 왜 이렇게 놔뒀어요?”

선생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땐 국경을 정하는 데 큰 그림에만 신경 썼던 거지. 여기 같은 작은 땅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거야. 당시엔 실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이대로 남아버린 거고.”

 

그날 나는 처음 포인트 로버츠라는 곳을 알게 됐다. 밴쿠버에서 자란 내가, 집에서 30분 거리도 안 되는 미국 땅이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거다. 뭔가 신기하면서도 이상했다.

 

“미국인데 캐나다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니… 나중에 꼭 가봐야겠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 포인트 로버츠라는 이름이 남았다.

 

포인트 로버츠 지도
포인트 로버츠 지도


오리건 조약과 국경의 탄생

포인트 로버츠의 역사는 18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미의 북서쪽 영토는 영국과 미국 모두가 탐내던 지역이었다. 양국은 갈등을 피하고 영토를 나누기 위해 협상에 나섰고, 그 결과물이 바로 오리건 조약(Oregon Treaty)이다. 조약은 간단했다. 북위 49도선을 기준으로 영토를 나누기로 한 것이다. 49도선 북쪽은 영국(현재의 캐나다), 남쪽은 미국의 땅이 됐다. 문제는 포인트 로버츠라는 작은 땅이었다. 이 지역은 49도선 아래에 있어 미국 땅으로 간주됐지만, 미국 본토와는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당시 국경을 설계한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작은 땅인데 굳이 신경 쓸 필요 있겠어?” 그렇게 포인트 로버츠는 미국에 속하게 됐다. 작은 문제를 만들기 싫어서 넘어갔던 이 결정은 오늘날까지도 포인트 로버츠를 독특하고 복잡한 장소로 남겨 놓았다.


여긴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포인트 로버츠에 갈 기회가 생겼다. 차를 몰고 밴쿠버에서 남쪽으로 달렸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약 45분,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자 국경 관리원이 내 얼굴을 한번 훑어보고 물었다.

 

“포인트 로버츠에 왜 가세요?”

“그냥 구경이요.”

그가 웃더니 여권을 돌려줬다.

“재밌는 곳은 아닐 겁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의 말대로 포인트 로버츠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은 썩 강렬하지 않았다. 조용한 도로, 몇 개의 상점,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 “여기가 미국 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해변 쪽으로 차를 몰았다. 길 끝에 주차하고 바다를 보니, 이곳이 왜 조용한 관광지로 알려졌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고요한 바다와 평화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했던 내겐 조금 심심하게 느껴졌다.

포인트 로버츠 국경
포인트 로버츠 국경


캐나다인들과 나눈 포인트 로버츠 이야기


저렴한 주유소, 원유 

 

포인트 로버츠에 도착해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기름을 넣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조용했다. 지나가는 차들 대부분은 BC주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마치 미국 땅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 너무나 캐나다 같은 풍경이었다. 기름을 넣는 동안 옆 주유구에서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캐나다에서 오셨죠?”

“네, 밴쿠버에서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여긴 대부분 캐나다 사람들이죠. 기름값 아끼려고 오는 거죠?”

“사실 기름도 넣고, 구경도 하려고요. 미국인데 이렇게 캐나다와 가까운 곳이라 신기해서요.”

그는 주유기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캐나다에선 요즘 기름값이 엄청 비싸잖아요. 여기선 리터당 20센트는 싸니까, 국경 두 번 넘을 만한 가치는 있어요.”

 

그와 대화를 나누며 나는 포인트 로버츠의 특이한 경제 구조를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인들이 여길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기름값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포인트 로버츠 주유소
포인트 로버츠 주유소


캐나다 사람들을 위한 우편함 서비스

 

기름을 다 채우고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한 여성이 커다란 상자를 트렁크에 싣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생겨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거워 보이는데, 쇼핑하신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손에 묻은 먼지를 털고 대답했다.

“네, 미국 아마존에서 주문한 물건이에요. 캐나다 아마존엔 없는 상품이 많아서요.”

“그럼 이런 물건을 포인트 로버츠로 받으시는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트렁크를 닫았다.

“맞아요. 미국에서만 판매하거나, 캐나다로 배송하려면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거든요. 여긴 미국이니까 배송비도 싸고, 이렇게 직접 와서 찾아가면 돼요.”

“국경 넘는 게 번거롭진 않으세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 번거롭긴 해요. 그래도 배송비 아끼는 게 크죠. 특히 블랙 프라이데이 때는 필수 코스예요. 다들 이런 식으로 쇼핑하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주차장 곳곳에서 사람들이 상자들을 싣고 있었다. 포인트 로버츠는 단순히 미국 땅이 아니라, 캐나다에서 구할 수 없는 상품을 사기 위한 관문이자 미국 쇼핑의 비밀 통로 같은 곳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아마존이 서로 다른 시스템을 운영하는 만큼, 이곳은 캐나다인들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포인트 로버츠에 소재한 UPS Store
포인트 로버츠에 소재한 UPS Store


휴식과 관광

 

점심쯤이 되자 배가 고파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와 간단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으니, 옆자리의 노부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처음이죠?”

“네, 맞아요. 그냥 구경하려고 왔어요.”

“좋은 선택이네요. 우린 리치몬드에서 자주 와요. 이곳은 조용하고 산책하기 좋아요.”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자주 오시면 특별히 하시는 일이 있나요? 뭐 쇼핑이라든가…”

노부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린 그런 건 안 해요. 그냥 이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요. 밴쿠버에선 어디 가도 복잡하잖아요. 여긴 그저 해변 따라 걷고, 커피 마시고, 바람 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포인트 로버츠가 단순히 쇼핑과 실용성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소소한 휴식과 여유를 찾는 공간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포인트 로버츠에 소재한 작은 카페
포인트 로버츠에 소재한 작은 카페


포인트 로버츠, 국경 너머의 사람들의 이야기


포인트 로버츠의 한적한 거리를 걷다 보니 작은 공원에 다다랐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 옆 벤치에 한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는 손에 커피를 들고 있었고, 발밑에는 가방이 놓여 있었다. 지나가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는데, 그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여행 오셨나 봐요?”

“네, 밴쿠버에서요.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조금 옮겨 앉아 내게 공간을 내주었다.

“그럼 잘 오셨네요. 이곳에 처음 와보면 다들 신기해하더라고요.”

나는 벤치에 앉아 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포인트 로버츠에 위치한 작은 놀이터
포인트 로버츠에 위치한 작은 놀이터


교육 문제

 

그는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화 중 그의 아이가 멀리서 놀이터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여기서 사는 건 어때요? 조용해 보이긴 하지만…”

그는 피식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조용한 건 좋아요. 근데 문제도 많죠. 예를 들어, 아이들 교육은 진짜 힘들어요.”

“왜요? 학교가 부족한가요?”

“초등학교까지만 여기 있어요. 그 이후엔 미국 본토로 가야 하거든요.”

그는 아이를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우리 딸도 몇 년 있으면 중학교를 가야 하는데, 매일 국경을 두 번 넘어서 통학해야 해요. 그게 쉽지 않죠. 거리도 멀고, 국경 대기 시간도 있어서, 하루에 몇 시간을 허비하게 돼요. 학교 가는 길이 이렇게 복잡한 곳이 또 있을까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두 번의 국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아이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의료 서비스 부족

 

그는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며 말했다.

 

“근데 학교보다 더 심각한 건 의료 서비스예요. 여긴 병원이 없거든요.”

“그럼 아플 땐 어떻게 하세요?”

“대부분 Delta로 가죠. 캐나다 쪽이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응급 상황에선 국경을 넘어야 하니 정말 답답하죠. 몇 달 전에 이웃집 할머니가 넘어지셔서 다리를 다쳤는데, 앰뷸런스를 부르기엔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직접 모시고 Delta 병원까지 갔어요. 운이 좋았던 거죠. 만약 심각한 응급 상황이었다면 어땠을지…”

 

그의 표정에서 이 작은 마을의 불편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현실이 느껴졌다.


생활물자와 쇼핑 그리고 고립

 

나는 물었다.

 

“그럼 장보는 건요? 여기도 가게가 있긴 하던데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작은 가게 몇 개 있긴 한데, 선택지가 없죠. 물건도 비싸고요. 그래서 대부분 델타로 나가요. 근데 문제는 돌아올 때 국경에서 무슨 물건을 샀는지 신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에요. 정말 사소한 거라도 잘못 신고하면 벌금 물어야 하거든요. 그런 일은 피하고 싶으니까 신경 쓸 게 많아요.”

그는 고개를 젓더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팬데믹 때는 더 심했어요. 국경이 폐쇄되면서 델타로도 못 나가니까 이 작은 마을에 갇혀버린 거죠. 장도 못 보고, 관광객도 못 들어오고… 그때 우리가 얼마나 고립된 곳에 사는지 제대로 알게 됐어요.”


 그들만의 특별한 공간

 

그는 다시 멀리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가 친구들과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도 여기 사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조용하고, 안전하고… 아이들은 여기가 자기들 세상이라고 생각하죠. 근데 어른들에겐 복잡한 현실이 많아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포인트 로버츠가 단순히 조용한 마을이 아니라, 국경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커뮤니티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 사람들은 불편함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이 작은 마을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와 작별 인사를 하고 공원을 나섰다. 그의 말처럼, 포인트 로버츠는 작지만 특별한 공간이었다. 국경의 틈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풍경이었다.

 

포인트 로버츠 Lighthouse Marine Park
포인트 로버츠 Lighthouse Marine Park


포인트 로버츠에서의 하루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국경을 넘는 행위는 단순히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상의 틈을 만드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기름값을 아끼러 오고, 배송비를 절약하기 위해 택배를 찾으러 오고,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해변을 거닐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들에게 포인트 로버츠는 “미국 땅”이 아니라, 그저 필요와 여유를 충족시켜주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국경 검문소에서 관리원이 물었다.

 

“어땠어요, 포인트 로버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왜 오는지 알 것 같아요. 작은 이유들이 모여서, 이곳이 꽤 특별한 곳이 됐네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포인트 로버츠죠. 별거 없는 것 같지만, 은근히 매력이 있거든요.

 

차를 몰고 돌아가며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국경이 나누는 것은 땅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포인트 로버츠는 그 경계 속에서도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모여드는 장소로 살아가고 있었다.


포인트 로버츠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곳은 단순한 지리적 특이점이 아니다. 국경이라는 인간의 발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기묘한지를 보여주는 한 조각이다. 그럼에도, 포인트 로버츠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소박하고, 조용하고, 독특하다. 이곳을 방문한 후 느낀 점은 단 하나다.

“국경이 없어지면 어떨까?”

 

포인트 로버츠는 그 질문에 답을 주지는 않지만, 분명 그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 번쯤 가보길 추천한다. 포인트 로버츠는 당신에게도 이상한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