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무렵, 정든 한국을 떠나 낯선 땅 캐나다에 발을 디뎠다. 부모님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속삭이셨다. “여기선 아파도 걱정 없어. 병원비가 공짜라잖아.” 어린 마음에 그 말은 마법처럼 들렸다. 돈 걱정 없이 아프면 그냥 병원에 가면 된다니,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저 천국 같았다. 그러나 3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천국'의 민낯을 봐버렸다. "돈 걱정 없다"와 "제때, 제대로 치료받는다"는 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어렸을 적 열감기 몸살에 시달리면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 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처방받았지만, 이곳 캐나다에선 어림없는 소리다. 의사를 만나도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푹 쉬고, 정 아프면 타이레놀이나 애드빌 먹으라는 것. 몇 번 겪고 나니 웬만한 감기는 그냥 버티는 게 상책이란 걸 깨달았다. 한국에선 이런저런 이유로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병원을, 캐나다에선 웬만해선 가지 않게 되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파 병원에 가도 진통제를 먹으라는 말, 상황이 심각해지면 응급실에 가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으니까.
젊은 시절엔 건강에 신경 쓸 겨를도, 이유도 없었다. 병원에 가야 할 일 자체가 드물었고, 이젠 이곳 의료상황에도 적응했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양팔에 고이 안고 있어도 부서질 듯 연약한 작은 아기에게 때때로 고열과, 얼굴과 온몸을 붉게 물들이는 발진이 찾아왔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막막하기만 했다. 패밀리 닥터와 예약을 잡으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했기에, 아이를 안고 워크인 클리닉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들은 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충분한 수분 섭취, 그리고 타이레놀. 그게 전부였다.
어느 밤, 원인 모를 감기에 걸린 아기가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축 늘어진 아기를 품에 안고 새벽 2시에 응급실로 내달렸다. 그곳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쏟아지는 환자들, 울부짖는 소리, 쉴 새 없이 번쩍이는 붉은 경고등. 접수를 마치고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웬걸, 예상외로 금방 들어오라고 한다. 갓난 아기라 급히 진료를 봐주겠다는 것이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기 침대가 놓인 방에서 의사를 기다렸다. 간호사가 초진을 하러 왔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이 흘렀다. 언제 의사가 오냐고 물으니, 오늘따라 응급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한다. 아이의 등을 토닥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려 4시간 만에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의사가 처방해준 건 결국 타이레놀이었다. 이럴 거면 왜 이 고생을 하며 아이를 응급실에 데려왔나? 의사가 전문적으로 잘 봐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나? 첫 아이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집에서 해열제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무조건 응급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체념하게 되었다. 둘째, 셋째, 그리고 막내 아이를 키우면서 병원에 가는 횟수는 점점 줄었다. 미열이 지속되고 잔기침이 2주 이상 이어지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돼 워크인 클리닉에 데려가 진단받고 약을 받아오는 정도였다. 그놈의 패밀리 닥터는 예약이 꽉 차 있어 만나고 싶을 때 만나기 어려웠으니까.
어느 날, 막내가 며칠째 고열로 앓고 있었다. 축 늘어져 눈 밑은 퀭하고 입술은 온통 부르터서 차마 보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패밀리 닥터는 바로 만날 수 없고, 응급실에 가면 뻔한 일이 벌어질 걸 알기에 워크인 클리닉이라도 가보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원래 다니던 워크인 클리닉에 전화해보니 이제 워크인 환자는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근처 다른 워크인 클리닉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워크인 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공지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부족한 의료 인력 탓에 워크인 클리닉 운영이 비효율적이라는 게 이유였다. 게다가 동네에 여러 군데 있던 워크인 클리닉이 사라지고, 'Urgent Care Center'라는 곳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웃긴 건, 그곳도 응급실처럼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대기'는 일상이다.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의료 시스템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응급실뿐만이 아니다. 가정의 찾기, 전문의 예약, 수술, 각종 검사... 모든 단계에 '기다림'이라는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물론 의료비 폭탄으로 가정이 파산하는 일은 드물다. 그건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그깟 병원비 아끼겠다고 질병을 키우고,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플 때 제대로, 신속하게 치료받지 못해 발생하는 그 수많은 부작용과 고통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 깊은 애증을 가진 1.5세 이민자로서, 그 이면을 낱낱이 해부하고 싶었다. "무상의료"라는 거룩한 이상 뒤에 숨겨진 기형적 구조, 즉 끝없는 대기 시간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 과연 불가피한 굴레인지 따져보고 싶었다. 직접 겪은 씁쓸한 경험들과 주변 이민자들의 생생한 증언, 그리고 얕게나마 조사한 자료들을 통해 캐나다 의료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보려 한다. 환자가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못 가는 것과 다름없는' 무한 대기에 지쳐 치료를 포기하는 또 다른 비극은 왜 방치하는가. '보편적 의료보장'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가정의, 그 험난한 첫 단추
캐나다 의료 시스템은 가정의(Family Doctor)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진료의 첫 관문이다. 전문의를 만나려면 반드시 가정의가 써주는 의뢰서(referral)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정의를 구하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점이다. 우리 가족도 이민 초기, 몇 달을 꼬박 찾아 헤맸다. 그 사이 감기라도 걸리면 '워크인 클리닉'을 전전해야 했고, 증상이 심하면 결국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그러면 또 “응급도 아닌데 왜 왔냐”는 핀잔이 쏟아진다.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Referral, 넘을 수 없는 장벽
가정의를 구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전문의 진료가 필요할 때다. 그 망할 놈의 'referral'이 문제다. 몇 년 전, 지독한 복통에 시달리던 나는 가정의를 통해 대장 내시경 소견을 받았다. 대장 내시경을 받으려면 소화기내과 전문의를 만나야 했는데, 병원에서 돌아온 답변은 가관이었다. “가장 빠른 예약이 1년 뒤입니다.” 365일 동안 불안과 고통 속에서 버티라는 말이었다. 혹시라도 상태가 더 악화되면 어쩌나, 밤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Referral → 기약 없는 대기 → 검사 → 또다시 대기. 이것이 캐나다 '무상의료'의 불편한 자화상이다. 환자는 그저 굴러다니는 서류 쪼가리 취급을 받는다.
대기 시간: 숨 막히는 기다림의 미학
캐나다에서 '아프다'는 건 단순히 질병과의 싸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기와의 싸움'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응급실, 전문의 진료, 수술, 검사... 그 어느 곳도 '대기'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응급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환자는 기약 없는 시곗바늘 위에 올라선 죄인이 된다. 중증 환자가 아니면 몇 시간을 기다려도 당연하다는 듯,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방치된다. 아이가 고열로 신음하던 그날 밤,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해 신속한 진료가 필요했지만, 4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지쳐 보이는 건 의사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녹초가 되었다.
전문의 진료 대기는 더욱 처참하다. 심각한 안구 건조증과 결막염으로 고생하던 지인 B는 안과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 3개월을 기다렸다. 그동안 그는 눈을 깜빡일 때마다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운전은 고사하고, 일상적인 집안일조차 버거웠다. “이러다 눈이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불안감에 휩싸여 병원에 전화를 걸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대기 환자가 워낙 많아서요.” 수술이나 정밀 검사는 말할 것도 없다. MRI, CT 한번 찍으려면 장비와 인력이 부족해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의 늪에 빠져야 한다. 무릎 수술을 앞둔 또 다른 지인은 장장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암 환자들은 어떨까. 그들에게 몇 달은 생사를 가르는 시간인데, 그저 '기다리라'는 말 외엔 어떤 대책도 없다. 시스템 안에서 환자는 그저 숫자로만 존재할 뿐이다.
캐나다 의료 시스템 붕괴: 그 뿌리 깊은 원흉
캐나다의 자랑이던 무상의료 시스템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의사, 간호사 부족과 같은 표면적인 문제들 뒤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구조적인 모순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교육, 제도, 재정, 인식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고질적인 병폐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거대한 블랙홀이다.
의사, 엘리트 지상주의가 낳은 기형적 수급 불균형
캐나다의 의사 양성 시스템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교육의 질"이라는 고상한 명분 아래, 소수 정예 엘리트 육성에만 골몰한다. 그 결과, 의대 입학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렵다. 좁아터진 문턱을 넘지 못한 수많은 인재는 다른 길을 찾아 떠난다. 의사 수급에 만성적인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2023년, 캐나다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고작 2.8명. 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다. 그나마 있는 의사들도 문제다. 누가 힘들고, 돈 안 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가정의를 하려 들까? 너도나도 돈과 명예를 쫓아 전문의로 빠져나간다.
가정의는 1차 의료의 중추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가정의는 귀하신 몸이다. "패밀리 닥터"를 구하지 못한 수백만 명의 환자들은 오늘도 발만 동동 구른다. 결국, 감기 몸살부터 가벼운 찰과상까지, 온갖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려든다. 응급실은 24시간 북새통. 중증 환자 치료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의료 시스템 전반이 과부하에 신음하고 있다.
간호사, 벼랑 끝 위태로운 외줄타기
간호사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마치 전쟁터 한복판, 총알받이로 내몰린 병사처럼, 캐나다 간호사들은 한계 상황에서 버티고 있다. 살인적인 업무량은 기본이다. 간호사 한 명이 돌봐야 할 환자 수는 권장 기준을 훌쩍 넘는다. 숨 쉴 틈 없는 노동 강도에 몸과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높은 이직률은 예고된 재앙이다. 지쳐 떠나는 숙련된 간호사들, 그 빈자리를 신규 간호사가 채워보지만, 역부족이다.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는 불가피하다. 환자 안전? 이제는 꿈에서나 꿀 법한 이야기가 되어간다. 간호 인력난 해소를 위해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이 절실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처우 개선, 인력 확충, 모두 시급하지만, 탁상공론만 무성할 뿐. 실질적인 대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재정, 엇박자와 책임 공방 속 낭비되는 세금
캐나다 의료 시스템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협력을 근간으로 운영된다. 마치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처럼, 두 주체는 의료라는 거대한 바다를 함께 항해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네 탓이오" 책임 공방만 무성한, 엇박자의 연속이다. 그 사이, 국민의 혈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낭비되고, 의료 시스템은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캐나다의 의료 재정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긍정적인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돈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제대로 된 감시와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주인이 돈을 어디에 쓰는지 모르는 사이, 재산이 축나고 있는 형국이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의료 재정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서로 다른 셈법, 엇박자 행보는 의료 시스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 연방 정부: "돈은 충분히 줬다. 알아서 잘 운영하라": 연방 정부는 주 정부에 일정 금액의 의료 보조금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주 정부의 책임이라는 입장이다. 마치 자식에게 용돈을 쥐여주고, "알아서 잘 쓰라"고 말하는 부모와 같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주 정부의 재정 운용에 대한 관리 감독에는 소홀하다. 돈만 쥐여줄 뿐,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된 감시와 평가를 하지 않는다. 주 정부가 방만하게 예산을 낭비하더라도, 이를 견제할 실질적인 장치가 부족하다. 결국, 연방 정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만, 의료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국민의 혈세만 낭비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주 정부: "턱없이 부족한 예산, 더 지원해달라": 주 정부는 연방 정부의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더 많은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주 정부 역시 재정 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는 소극적이다.
- 핑퐁 게임 속 방치되는 의료 현장: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 게임을 하는 사이, 정작 중요한 의료 현장은 곪아 터져가고 있다. 의료 인력 부족, 시설 노후화, 긴 대기 시간 등, 산적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엇박자의 근본 원인, 서로 다른 셈법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엇박자는 단순히 정치적 갈등을 넘어, 서로 다른 셈법에서 기인한다.
- 연방 정부: 거시적 관점, 재정 효율성만 강조: 연방 정부는 국가 전체의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다. 의료뿐 아니라, 국방, 교육,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예산을 배분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 분야에만 무한정 예산을 투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연방 정부는 주 정부가 주어진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를 바란다.
- 주 정부: 미시적 관점,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 급급: 주 정부는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주체다. 의료 현장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방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당장 눈앞에 닥친 환자들을 치료하고, 의료 인력을 확보하고,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의 실종: 이러한 서로 다른 셈법 때문에,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기적인 문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의료 시스템의 미래를 위한 근본적인 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1차 의료와 예방 의료, 방치된 사각지대: 무너지는 의료 시스템의 최전선
가정의, 1차 의료의 핵심이자 붕괴의 신호탄
가정의는 1차 의료의 핵심이다. 이들은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만성 질환을 관리하며, 전문의 진료가 필요할 경우 의뢰하는 등 게이트키퍼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캐나다의 가정의는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 가정의 부족의 심각성: 수백만 명의 캐나다 국민이 자신의 건강을 돌봐줄 가정의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패밀리 닥터"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 진료 접근성 악화: 가정의를 구하지 못한 환자들은 경미한 증상에도 응급실을 찾거나, 민간 클리닉을 전전하며 비싼 진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이는 의료 접근성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의료 시스템 전반에 과부하를 초래한다.
- 만성 질환 관리 부실: 가정의 부족은 만성 질환 관리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기적인 검진과 상담을 통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해야 할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예방 의료, 무너진 방어선: 병을 더 키워서 더 크게 앓는 사회
예방 의료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여, 개인의 건강을 지키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캐나다의 예방 의료 시스템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 예방 프로그램, 구색만 갖춘 형식적 운영: 예방 접종, 건강 검진, 만성 질환 관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예방 의료 프로그램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예산 부족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데 그치고 있다.
- 만성 질환 예방 관리 실패,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료비: 당뇨, 고혈압, 심혈관 질환과 같은 만성 질환은 생활 습관 개선, 조기 검진, 꾸준한 관리를 통해 충분히 예방하거나 악화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예방 의료 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인지하지 못한 채 병을 키우고 있다. 이는 결국 중증 합병증으로 이어져, 막대한 의료비 지출을 초래한다.
- 정신 건강, 방치된 또 다른 시한폭탄: 우울증, 불안 장애와 같은 정신 건강 문제 역시 예방과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신 건강 검진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고,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삶의 질 저하는 물론, 생산성 저하, 자살률 증가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 건강 불평등 심화: 예방 의료의 붕괴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저소득층, 소외 계층은 예방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 질병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는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주 정부와 연방 정부, 책임 떠넘기기 속 곪아가는 의료 시스템
1차 의료와 예방 의료의 붕괴는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주 정부는 예산 부족을 핑계로 예방 의료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고, 연방 정부는 주 정부의 관할이라며 개입을 꺼리고 있다. 이 사이에서 1차 의료와 예방 의료는 더욱 곪아가고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캐나다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무상의료, 과연 무엇이 무료인가?
캐나다의 무상의료는 엄밀히 말해 '완전 무료'는 아니다. 응급 처치, 기본적인 진료와 수술 등은 무료지만, 치과, 안과, 처방약은 대부분 개인 부담이다. 충치 하나 치료하는 데도 수백 달러가 깨지고, 안과 검사나 시력 교정술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처방약 역시 보험이 없으면 개인 부담이 만만치 않다. 정신과 진료 역시 긴 대기 시간과 비싼 사설 상담 비용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결국 "돈이 있어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구조는 여전히, 그리고 은밀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설령 치료 자체가 무료라 해도, 그 앞에는 지긋지긋한 대기 시간이 버티고 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몇 달, 심지어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 시간 동안 무너져 내리는 일상과 정신적 고통은 누가 보상해 주는가. 과연 이 기다림의 비용이 '무료'보다 저렴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1.5세 이민자로서의 씁쓸한 결론: 무너져가는 캐나다 의료 시스템, 그리고 희망의 불씨
캐나다 이민 1.5세로서, 나는 이 땅의 무상의료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 성장했다. 적어도 병원비 때문에 가정이 파산하는 일은 드물었기에, 한국과 비교했을 때 큰 혜택이라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면서, 그리고 "적시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면서, 캐나다 의료 시스템의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기약 없는 대기 시간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불안을 안겨준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가 아플 때마다 "언제쯤 진료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밤새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 혹시라도 '골든 타임'을 놓치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밤을 지새우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아버지의 건강, 그리고 한국 의료 시스템과의 충격적인 조우
몇 년 전,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은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 대한 나의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었다. 한국을 떠나 있던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눈부시게 발전해 있었다. 병원을 찾은 지 단 하루 만에 모든 검사와 진료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캐나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는 벌어지고 있었다.
- 신속함: 병원 도착부터 검사, 의사 상담, 치료 계획 수립, 그리고 약 처방까지, 모든 과정이 단 하루 만에, 그것도 거의 기다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치 잘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모든 것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돌아갔다.
- 최첨단 장비: 검사를 받으면서 눈에 들어온 최첨단 의료 장비들은 캐나다의 낡고 오래된 장비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환자의 상태를 더 정확하고 빠르게 진단할 수 있는 최신 기술이 한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었다.
- 의료진의 전문성: 환자를 대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태도에서 전문성과 세심함이 묻어났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치료 계획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는 모습은 캐나다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아버지께서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캐나다에 있었다면, 기약 없는 대기 시간 속에서 병을 키우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이 경험은 나에게 큰 충격과 함께,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안겨주었다.
무상의료라는 허울, 그리고 곪아 터진 현실
캐나다의 무상의료는 분명 명과 암이 뚜렷하다. '돈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누구나, 아플 때,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무상'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은 떨어지고, 대기 시간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의료진은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최근 들어 원격 진료 확대, 해외 의료 인력 수용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당장 체감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이제는 이 낡고 병든 시스템에 메스를 댈 때다. 캐나다에서 30년 넘게 1.5세 이민자로 살아온 나의 씁쓸하지만 진심 어린 결론이다. 더 이상 땜질식 처방으로는 안 된다.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무상의료를 실현해야 한다. 그것만이 무너져가는 캐나다 의료 시스템을 되살리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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