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13일의 금요일, 그 기원을 파헤치다

OUTNUMBERED 2025. 3. 21. 11:47

오랜 시간 ‘13일의 금요일’은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오랜 시간 ‘13일의 금요일’은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오랜 세월 동안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진 ‘13일의 금요일’은 단순한 미신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후반에는 이 미신을 깨뜨리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비밀결사 단체가 등장했고, 20세기 초에는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이 출간되었으며, 이후에는 수십 년간 이어진 공포 영화 프랜차이즈로까지 확장되었다. 심지어 이 날에 대한 공포를 설명하기 위해,

paraskavedekatriaphobia
friggatriskaidekaphobia

 
라는 복잡한 이름의 심리학 용어도 생겨났다. 지금부터 13일의 금요일이 어떻게 불운의 상징이 되었는지 그 기원을 살펴보고, 역사 속 13일의 금요일에 일어난 주요 사고와 참사들을 되짚어보며, 그리고 대중문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되며 뿌리내렸는지를 차례로 짚어본다.


숫자 13의 공포

서양에선, 사다리 밑을 지나가거나, 검은 고양이와 마주치거나, 거울을 깨는 일이 불운을 부른다는 믿음처럼, 많은 사람들은 13일의 금요일이 특별히 더 불운한 날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 전통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숫자 13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수세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서양 문화에서는 전통적으로 숫자 12를 ‘완전함’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의 12일, 12개월, 12개의 별자리,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올림포스의 12신, 이스라엘의 12지파 등은 모두 질서와 균형을 상징하는 예로 자주 인용된다. 이처럼 완전함을 상징하는 12 다음에 오는 숫자 13은 자연스럽게 균형이 깨진 숫자, 즉 불길함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13번째 조항이 누락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는 단순한 필사상의 실수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숫자 13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이를 오래전부터 13이 불운한 숫자로 여겨져 왔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처럼 13이라는 숫자에 대한 공포는 단순한 미신을 넘어, ‘트리스카이드카포비아 (triskaidekaphobia)’라는 이름의 심리학적 공포증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심리학적 용어의 뜻은 숫자 13에 대한 극심하고 비합리적인 공포를 의미하며, 일부 사람들에게는 일상에 영향을 줄 만큼 깊게 각인된 심리적 불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왜 13일의 금요일이 불길할까?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와 12명의 제자, 총 13명이 참석했다.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와 12명의 제자, 총 13명이 참석했다.

 
기독교 이야기에 따르면, 최후의 만찬에는 예수와 12명의 제자가 함께 참석했다. 총 13명이었고, 그중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13번째 손님이었다. 이 만찬은 성 목요일 즉,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를 나눈 날에 열렸고, 그 다음 날인 금요일에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최후의 만찬의 좌석 배치로 인해, 기독교 전통에서는 한 테이블에 13명이 앉는 것이 죽음을 부르는 불길한 징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금요일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다소 약하긴 하지만, 이 또한 기독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예수가 금요일에 처형된 것 외에도, 이브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건넨 날, 그리고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날 역시 금요일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이처럼 숫자 13과 금요일이 각각 불길하다는 인식이 결합되면서, ‘13일의 금요일’은 특히 피해야 할 날로 여겨지게 되었다.


'13클럽(Thirteen Club)'

19세기 후반 조직된 "13 클럽" 이라는 비밀 결사체.
19세기 후반 조직된 "13 클럽" 이라는 비밀 결사체.

 
19세기 후반, 건축가이자 남북전쟁 참전 군인이었던 뉴요커 윌리엄 파울러(1827–1897)는 숫자 13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특히 13명이 식탁에 함께 앉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금기를 깨기 위해 ‘13클럽’이라는 비밀 결사체를 조직했다.
 
이 클럽은 매달 13일, 파울러가 운영하던 '니커보커 코티지'의 13번 방에서 모임을 가졌다. 회원들은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사다리 밑을 지나야 했고, 그 위에는 “죽음을 앞둔 자들이 경례한다(Morituri te Salutamus)”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식사는 항상 13가지 요리로 구성되었으며, 숫자 13에 얽힌 미신을 정면으로 비틀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이 다소 엉뚱하고 도발적인 모임에는 이후 미국 대통령이 된 체스터 A. 아서,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참여한 바 있다. 단순한 장난을 넘어, 사회에 만연한 비합리적인 미신에 도전하려는 재치 있는 시도였다.


대중문화 속 13일의 금요일

‘13일의 금요일’이 단순한 숫자 조합을 넘어 미신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 중 하나는 1907년 출간된 소설 『Friday, the Thirteenth』였다. 작가 토마스 윌리엄 로슨은 이 작품에서, 뉴욕의 한 증권 브로커가 13일의 금요일에 대한 대중의 미신을 교묘하게 이용해 월스트리트에 혼란을 일으키고 그 틈을 타 막대한 수익을 챙기는 이야기를 그렸다.
 

아이스하키 마스크를 쓴 연쇄살인마 제이슨
아이스하키 마스크를 쓴 연쇄살인마 제이슨

 
1980년에 개봉한 공포 영화 『Friday the 13th』는 ‘13일의 금요일’을 대중문화 속 공포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스하키 마스크를 쓴 연쇄살인마 제이슨의 등장은 강렬했고, 이후 수많은 속편과 만화, 소설, 비디오게임, 굿즈, 핼러윈 코스튬 등 다양한 파생 콘텐츠로 이어지며 이 미신을 문화적 현상으로 확장시켰다.


실제로 13일의 금요일에 일어난 사건들

당시 강력한 종교·군사 조직이었던 템플 기사단.
당시 강력한 종교·군사 조직이었던 템플 기사단.

 
13일의 금요일이 단순한 미신을 넘어 불길한 날로 인식되게 만든 역사적 사건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벌어진 템플 기사단의 대대적인 체포 사건이다. 이날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는 성지 수호를 목적으로 결성된 강력한 종교·군사 조직인 템플 기사단을 급습해 수백 명의 기사들을 체포했다.
 

필리프 4세는 템플 기사단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고 그들을 모함한다.
필리프 4세는 템플 기사단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고 그들을 모함한다.

 
표면적으로는 이들이 각종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혐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이 그들의 막대한 재산을 노린 정치적 결정이었다. 이후 많은 기사단원들이 고문을 당하거나 화형에 처해졌으며, 이 사건은 템플 기사단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 일이 13일의 금요일 미신과 직접 연결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다른 템플 기사단 전설들과 마찬가지로 진실 여부는 뚜렷하지 않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이 실제로 13일의 금요일에 발생했다.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다:

  • 1940년 9월 13일: 독일군의 버킹엄궁 폭격
  • 1964년 3월 13일: 뉴욕 퀸스에서 발생한 키티 제노비스 살인 사건
  • 1970년 11월 13일: 방글라데시에서 3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사이클론
  • 1972년 10월 13일: 안데스산맥에서 칠레 공군 비행기 실종
  • 1996년 9월 13일: 래퍼 투팍 샤커 사망
  • 2012년 1월 13일: 30명이 목숨을 잃은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좌초 사고

이처럼 13일의 금요일은 오랜 미신과 역사적 사건, 그리고 대중문화의 상징성이 겹쳐지며 단순한 미신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적·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이 날이 불운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나 객관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와 집단적 믿음은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