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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가 불러온 재앙, ‘더 가이 게임’: 역사상 최악의 게임

OUTNUMBERED 2025. 1. 23. 04:05

게임 제작의 어려움과 실패의 사례

게임 개발자
게임 개발자

 

게임 제작은 결코 쉽지 않다. 하나의 게임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아이디어가 검토되고,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투입된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히 준비하더라도, 결과가 항상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잘못된 선택 하나가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2004년, ‘더 가이 게임(The Guy Game)’이라는 이상함을 넘어 괴기스러운 게임이 PS2와 Xbox, 그리고 윈도우용으로 북미에서 출시됐다. 겉으로는 퀴즈 게임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옛날 80~90년도에 용산 선인상가에서 팔던 저질 성인 비디오에 더 가까웠다. 처음엔 기존에 없던 ‘참신한 성인 게임’을 표방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재미는 없고, 조잡한 선정성만 가득했다.

 

닌텐도와 ‘더 가이 게임’: 망작의 탄생 배경

닌텐도 본사
닌텐도 본사

 

출시 후, 이 게임은 미국 전역에서 거센 논란을 일으키며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될 만큼 강렬했다. 그리고 이 실패작의 탄생에는 "닌텐도"라는 거대 기업이 있다. 직접 제작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닌텐도의 지원과 그 과정에서 얽힌 사건들이 결국 ‘더 가이 게임’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충격적인 게임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제프 스팬젠버그: 몰락한 천재 개발자

제프 스팬젠버그가 창립하고 닌텐도가 투자한 외주 개발사로 시작한 "레트로 스튜디오"
제프 스팬젠버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프 스팬젠버그(Jeff Spangenberg)다. 그는 1990년대 초반, FPS 장르의 전설로 남은 ‘터록(Turok)’ 시리즈를 통해 게임 업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속해 있던 어클레임(Acclaim)은 당시 혁신적인 게임 디자인으로 주목받았고, 스팬젠버그는 그 중심에서 활약하며 업계에서 인정받는 제작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성공도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 내부의 갈등과 스팬젠버그의 독특한 업무 스타일이 맞물리면서 그는 1998년 결국 어클레임에서 해고된다.

 

"닌텐도"와 "레트로 스튜디오"의 만남

제프 스팬젠버그가 창립하고 닌텐도가 투자한 외주 개발사로 시작한 "레트로 스튜디오"
제프 스팬젠버그가 창립하고 닌텐도가 투자한 외주 개발사로 시작한 "레트로 스튜디오"

 

해고 후, 그는 오스틴에 ‘레트로 스튜디오(Retro Studios)’를 설립했다. 이 스튜디오는 처음부터 큰 야망을 품고 있었다. 스팬젠버그는 밸브(Valve), 리추얼(Ritual), 루카스아츠(LucasArts) 등 유명 게임 회사에서 인재를 적극적으로 스카우트해 팀을 꾸렸다. 마침 닌텐도가 미국 내 유능한 스튜디오를 찾고 있던 시기였고, 그의 이러한 행보는 닌텐도의 눈에 띄기에 충분했다. 닌텐도는 당시 차세대 콘솔(개발 코드명 ‘돌핀’, 이후의 게임큐브)을 준비 중이었고, 북미 시장에서 이를 이끌어줄 스튜디오를 물색하고 있었다. 레트로 스튜디오는 닌텐도의 투자와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 결과, 레트로는 한 번에 네 개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몬스터 트럭 레이서, 미식축구 게임, RPG ‘레이븐 블레이드(Raven Blade)’, 그리고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운 액션 게임 프로토타입이 그것이다. 스팬젠버그는 이 시점에서 닌텐도의 신뢰를 얻으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성공이 그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된다는 사실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스팬젠버그의 방탕한 경영과 "레트로 스튜디오"의 위기

스팬젠버그, 레트로 게임 재직중
스팬젠버그, 레트로 게임 재직중

 

스팬젠버그닌텐도의 지원으로 업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레트로 스튜디오는 단번에 주목받는 스튜디오로 성장했고, 닌텐도의 투자 덕분에 한꺼번에 네 개의 프로젝트를 맡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스팬젠버그에게는 자만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레트로 스튜디오의 대표였던 그는 회사 경영보다는 방탕한 생활에 더 열중했다. 당시 그는 고급 저택에 살며 스트립 클럽에 거의 매일 출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유흥업소 여성들에게 돈을 뿌리며, 집과 스트립 클럽을 가리지 않고, 유흥업소 여성들과 술과 마약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회사에 출근하는 날도 드물었으며, 출근하더라도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인 일에 시간을 보냈다. 이런 태도는 회사 내부에서도 불만을 불러일으켰지만, 닌텐도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그에게 누구도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러나 닌텐도는 레트로 스튜디오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결국 시게루 미야모토를 비롯한 닌텐도의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일본에서 스튜디오를 방문해 점검에 나섰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진행 중이던 네 개의 프로젝트 중 세 개는 부실한 결과물로 혹평을 받았고, 즉각 취소됐다. 미식축구 게임, 몬스터 트럭 레이서, 그리고 RPG ‘레이븐 블레이드’ 모두 개발이 중단되었다. 그나마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액션 게임 프로토타입만 가능성을 인정받아 닌텐도의 지원 아래 계속 개발되었고, 이것이 훗날 ‘메트로이드 프라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스튜디오의 경영 문제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스팬젠버그는 회사 자원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회사 컴퓨터를 이용해 소프트코어 포르노 사이트인 ‘신풀 서머(Sinful Summer)’를 운영했다. 이 사이트는 그의 저택에서 찍은 스트립 댄서들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가득했다. 닌텐도의 가족 친화적인 이미지를 고려할 때, 이런 행동은 치명적인 문제였다. 닌텐도는 스팬젠버그가 더 이상 레트로 스튜디오를 이끌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닌텐도는 그에게 지분을 매각하고 회사를 떠날 것을 제안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선택지가 없는 제안이었다. 스팬젠버그는 이를 받아들였고, 레트로 스튜디오는 닌텐도의 관리 아래 재정비되었다. 한때 닌텐도의 신뢰를 받으며 성공의 정점에 올랐던 스팬젠버그는 자신의 방탕한 생활과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 닌텐도의 투자와 기대는 그의 성공의 기반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를 몰락으로 이끈 원인이기도 했다.

 

희대의 망작 ‘더 가이 게임’의 탄생

"닌텐도" 산하 "레트로 스튜디오" 퇴사 후 스팬젠버그가 만들 "탑헤비 스튜디오"
"닌텐도" 산하 "레트로 스튜디오" 퇴사 후 스팬젠버그가 만들 "탑헤비 스튜디오"

 

희대의 망작 "더 가이 게임" PS2 버젼 앞 커버
희대의 망작 "더 가이 게임" PS2 버젼 앞 커버

 

희대의 망작 "더 가이 게임" PS2 버젼 뒷 커버
희대의 망작 "더 가이 게임" PS2 버젼 뒷 커버

 

레트로 스튜디오에서 퇴사한 후, 닌텐도와의 거래로 자금을 마련한 스팬젠버그는 또 한 번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 그것이 바로 ‘탑헤비 스튜디오(Topheavy Studios)’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지만, 이번에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스팬젠버그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다. “어린 게이머들을 위한 게임은 지겹다. 이제는 내 취향에 맞는 어른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겠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더 가이 게임(The Guy Game)’이다. 이 게임은 성인 취향의 FMV(실사 영상) 게임으로, 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만취한 여대생들에게 퀴즈를 내고,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상의를 벗는 장면이 그대로 영상으로 등장하는 구조였다. 진행자인 코미디언 매트 새들러(Matt Sadler)는 Spring Break (봄방학)의 해변을 돌아다니며 여대생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플레이어는 여성들이 정답을 맞힐지 못 맞힐지 베팅해야 했다. 여성들이 틀릴 경우, 상반신 노출 장면이 플레이어에게 ‘보상’으로 제공되는 방식이었다. 반대로 정답을 맞히면? 그저 끝이었다. 게임 진행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말 그대로 무의미한 결과였다.

 

"더 가이 게임" 타이틀 화면
"더 가이 게임" 타이틀 화면

 

"더 가이 게임"에서는 화면에 나오는 여성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더 가이 게임"에서는 화면에 나오는 여성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이 사진의 여성은 '더 가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대상 중 하나다.
이 사진의 여성은 '더 가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대상 중 하나다.

 

"더 가이 게임" 플레이 중 코미디언 매트 새들러가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 가이 게임" 플레이 중 코미디언 매트 새들러가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 가이 게임" 퍼즐 게임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방식이다.
"더 가이 게임" 퍼즐 게임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방식이다.

 

"더 가이 게임" 퀴즈 게임. 2000년대 초반의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일상적인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더 가이 게임" 퀴즈 게임. 2000년대 초반의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일상적인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이 게임(The Guy Game)’ 2004 당시 남초 문화 모든 고정관념을 집대성한 작품이었다. 제작진은 이를어른들을 위한 파격적인 엔터테인먼트 포장했지만, 실상은 조잡한 선정성에 기대어 관심을 끌어보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게임 자체도 엉망이었다. 기본적으로 단순한 퀴즈 형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허술했고, 여기에 Flash-O-Meter” 미터같은 기묘한 장치가 더해져 게임의 완성도를 더욱 떨어뜨렸다. ‘플래시 미터 여성 출연자의 신체를 평가하는 게이지로, 플레이어는 출연자의 몸매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고, 점수가 높을수록 여성의 노출도가 증가하는 방식이었다. 제작진은 이를참신하고 유머러스한 요소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여성 캐릭터를 단순히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유치하고 불쾌한 기믹이었다.

 

"플래시 오 미터" 게이지 가 최고조에 도달하면 선정적인 장면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플래시 오 미터" 게이지 가 최고조에 도달하면 선정적인 장면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많은 매체들은 "플래시 오 미터"를 성적 코드를 억지로 끼워 넣은, 시대에 뒤떨어진 기믹이라 평가했다.
많은 매체들은 "플래시 오 미터"를 성적 코드를 억지로 끼워 넣은, 시대에 뒤떨어진 기믹이라 평가했다.

 

‘더 가이 게임’은 단순히 재미없는 게임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완전히 동떨어진 실패작으로 기록되었다.
‘더 가이 게임’은 단순히 재미없는 게임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완전히 동떨어진 실패작으로 기록되었다.

 

이런 요소는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기는커녕, 불편함과 저속함만 남겼다. 플레이어의 선택이 게임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구조적 문제도 비판을 받았다. 게임 매체들은  장치를 두고 성적 코드를 억지로 끼워 넣은, 시대에 뒤떨어진 기믹”이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게다가  가이 게임’은 시대적인 흐름과도 완전히 어긋났다. 당시 게임 업계는 폭력성과 선정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여러 단체와 언론이 게임 산업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던 상황에서, ‘더 가이 게임’처럼 노골적이고 저급한 작품은 비난의 화살을 피할  없었다. 결국, ‘더 가이 게임’은 단순히 재미없는 게임일  아니라,  시대와 완전히 동떨어진 실패작으로 기록되었다.

 

미성년자 사건과 법적 논란

 

설상가상으로 결정적 치명타는 따로 있었다. 발매 후 4개월쯤 지나, 게임에 출연한 여성 중 한 명이 당시 만 17세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미국 법 기준으로 미성년자 노출 영상이라면 곧장 불법. 소송이 걸리면서 ‘더 가이 게임’은 북미 전역에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애초에 큰 인기를 끌지도 못했지만, 이 사건으로 완전히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 와중 제작자 스팬젠버그와 탑헤비 스튜디오는 “가장 논란 많은 게임이 금지됐다!”며 홈페이지에 자극적인 문구를 올리고, 심지어 ‘더 가이 게임: 게임 오버(The Guy Game: Game Over)’라는 성인 DVD까지 내 놨다. 이번엔 아예 퀴즈 요소도 뺐고, 그냥 영상만 늘어놓는 형식이었다. 모자나 티셔츠 같은 굿즈까지 묶어서 팔았는데, 이를 누가 샀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탑헤비는 많은 비난과, 계속되는 소송으로, 이 작품을 끝으로 문을 닫았고, 퍼블리셔였던 ‘더 개더링 오브 디벨로퍼스(The Gathering of Developers)’도 해체 혹은 다른 곳으로 흡수됐다. 테이크투(Take-Two)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레트로 스튜디오는 닌텐도 품에서 ‘메트로이드 프라임’과 ‘돈키콩 리턴즈’ 시리즈 같은 훌륭한 게임들을 제작했다.

 

닌텐도의 책임과 업계의 교훈

 

만약 닌텐도가 애초에 제프 스팬젠버그와 그의 레트로 스튜디오(Retro Studios)와 외주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제프 스팬젠버그방탕한 경영과 근무태도를 문제 삼아 그의 지분을 인수하는 대신 소송을 제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했다면 그는 ‘탑헤비 스튜디오(Topheavy Studios)’를 창업할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고, "더 가이 게임(The Guy Game)"이라는 희대의 망작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닌텐도는 문제를 조기에 인지하고도 그를 회사에서 내보내는 대가로 지분을 인수하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그 의도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겠지만, 그들이 내린 결정은 업계의 흑역사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말았다.

 

결말: 게임 역사에 남은 흑역사와 교훈

 

온갖 스캔들로 얼룩진 가이 게임 결국 미성년자 성추행이라는 최악의 사건으로 역사 속에 묻혔다. 오히려 그로 인해 게임이 기괴한 도시 전설 전해지는 면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와서는 구하기조차 힘든 희대의 괴작 뿐이다. 어떤 의미로는 스팬젠버그 방탕했던 행적과 어울리는 결말이기도 하다. 모든 소란이 지나가고 나면, 남는 어지럽혀진 공간과 뒤늦은 후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