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시카고 마피아의 중간 보스 일본인과 그를 추적한 신참 FBI 요원의 이야기

OUTNUMBERED 2025. 3. 9. 15:36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의 최고 위 간부 자리까지 오른 일본계 미국인 "켄 에토"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의 최고 위 간부 자리까지 오른 일본계 미국인 "켄 에토"

 
시카고 마피아 조직 ‘아웃핏’은 전설적인 보스 알 카포네 시대부터 이어진 악명 높은 범죄 조직이다. 이 조직에서 유례없이 인종적 편견과 불신의 벽을 뛰어넘어 마피아 최고위 간부 자리에 오른 일본계 미국인이 있다. 바로 켄 에토, 일명 ‘도쿄 조’다. 그는 마피아의 주요 수익원인 불법 도박 사업을 관리하며 조직 내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3년, 조직이 에토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에토는 생존과 복수를 위해 FBI와 협력하기로 마음먹는다. 조건은 단 하나—스미스 요원에게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래인 스미스는 신참 FBI 요원이었다. FBI 내 여성 요원은 극소수였고, 특히 조직범죄 수사에 직접 투입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했고, 켄 에토 사건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도약의 기회였다. 한편, 에토에게 FBI와의 협력은 조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한때 조직의 배신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마피아 간부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신참 FBI 여성 요원. 미국 조직범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켄 에토의 유년기

 
켄 에토는 1919년,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일본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일본에서 건너온 이민 1세대로, 루이지애나에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며 힘겹게 살아갔다. 그러나 1920~30년대 루이지애나의 경제 상황은 악화되었고, 특히 일본계 이민자들은 심각한 차별과 경제적 불안정에 시달렸다. 켄 에토의 부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많은 일본계 가족들이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동하는 가운데, 에토의 가족도 결국 1920년대 말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아파트에서 억압적인 가정환경 속에 자란 에토는 어릴 때부터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집에서는 일본 전통과 가치관을 강요받았지만, 학교와 거리에서는 '진짜 미국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쳤다. 경직된 가정의 규율과 바깥세상에서 마주하는 인종 차별은 그를 점점 반항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결국 8학년 무렵 학교를 중퇴하고 부모의 꿈과 기대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왔다. 열다섯 살의 나이로 혼자가 된 에토는 로스앤젤레스의 혼잡한 거리를 떠나 북쪽 포틀랜드로 향했다.
 
거리로 나온 에토는 생존을 위해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잡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나 정규 교육도, 특별한 기술도 없는 아시아계 청년에게 미국 사회는 냉혹했다. 임금이 체불되거나 인종 차별로 해고당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는 점차 소매치기와 절도 같은 범죄를 생계 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이는 그가 범죄 세계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1942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미국 내 모든 일본계 미국인들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한 루즈벨트 행정부는 행정명령 9066호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12만 명이 넘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고, 당시 22세였던 에토도 오리건 주 툴레이크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수용소에서 그는 미국 시민임에도 '잠재적인 적'으로 취급 받는 모순적 현실에 절망했다.
 
그곳에서 에토는 한밤중에 통금 시간을 어긴 혐의로, 첫 공식적인 범죄 기록을 남기게 된다. 수용소의 무료한 일상 속, 그는 동료 수감자들과 어울리며 포커, 바카라, 블랙잭 등 다양한 카드 게임에 몰두했다. 수용소라는 제한된 공간, 예측 불가능한 변수, 그리고 인간 본성의 다양한 면모를 목격하며, 그는 도박의 숨겨진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체득해 나갔다. 이 우연한 계기가 후일 그를 시카고 마피아의 도박 사업 책임자로 이끄는 첫 발걸음이 될 줄은, 당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마피아 세계로 들어서다

 
전쟁이 끝난 후, 에토는 시카고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정착을 위해 직업을 구하려 했지만, 일본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언어 장벽으로 인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낮에는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허드렛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지만, 일당 노동만으로는 충분한 돈을 벌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불법 도박장에 드나들며 점점 더 도박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미래의 아내가 될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테레사였다. 두 사람은 도박장에서 처음 마주쳤고,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며 가까워졌다. 테레사는 단순한 도박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불법 도박장과 연관이 깊었고, 이미 시카고 마피아 조직 ‘아웃핏’과도 접점이 있었다. 당시 아웃핏은 도박장을 운영하며 수익을 거두고 있었고, 테레사는 이곳에서 조직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그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에토는 테레사의 소개로 아웃핏의 구성원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돈을 빌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조직의 집행자들은 에토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공포에 굴복하지 않았다. 비굴하게 매달리거나 두려움에 떠는 대신,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
 
FBI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놀라운 냉정함을 보여 마피아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결국 그들에게 고용되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마피아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그들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 에토는 단순한 외부인이 아닌,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그는 시카고 아웃핏에서 본격적인 범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의 핵심 간부로 성장하다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의 간부 시절 켄 에토.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의 간부 시절 켄 에토.

 
 
30년 동안 켄 에토는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그는 '볼리타'라는 불리는, 당시 시카고의 저소득층 라틴 아메리카 이민자 사회에서 성행했던 불법 사설 복권 사업을 운영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참가자들은 1부터 100까지의 숫자 중 하나를 선택하여 베팅하고, 매일 무작위로 추첨되는 숫자가 당첨되면 베팅 금액의 수십 배에 달하는 상금을 받았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숫자 게임 같지만, 실제로는 조직 폭력배들이 운영하며 탈세, 폭력, 살인 등의 범죄와 연루되는 경우가 많았다. 적은 돈으로 일확천금을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미끼로 서민들을 끌어들였지만, 사실상 당첨 확률은 극히 낮았고, 대부분의 돈은 에토와 같은 조직 운영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 사업은 하루에 5만 달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수십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시카고 마피아의 큰 수입원이었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냉철한 판단력 덕분에 에토는 아웃핏 내에서 점점 영향력을 확대했고, 아시아계로서는 전례 없는 고위직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FBI의 감시망을 좁혀오는 결과를 낳았다. 에토는 수십 년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다녔지만, 그의 화려한 부상은 FBI의 표적이 되었다. 1980년대 초, FBI는 마침내 그를 체포할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작전에 돌입했다. 당시 FBI는 신참 요원이었던 일레인 스미스를 에토 수사에 투입했다. 몇 달 후, 스미스는 에토와 직접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FBI와 협력할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일레인 스미스 요원의 FBI 신분증.
일레인 스미스 요원의 FBI 신분증.

 

“스미스 요원, 당신은 그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고, 그 일이 나를 밀고자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는 조직을 배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내 방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확고한 신념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 2023년<시카고 매거진>인터뷰 중 켄 에토의 발언
 
 
FBI는 오랜 수사 끝에 켄 에토를 불법 사설 도박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결국 그는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선고 공판은 1983년 2월 25일로 예정되었다.


FBI 정보원이 되다

 
1983년 2월 10일, 스미스 요원은 한밤중에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켄 에토가 머리에 세 발의 총알을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에토는 조직의 두목 빈센트 솔라노와의 저녁 식사 모임에 초대받았다. 그는 살해당할 것이라는 예감을 느꼈고, 목욕을 하고 최고급 양복을 입고 아내에게 보험 증서가 있는 곳을 알려준 후 동료 조니 가투소제이 캠피즈를 만나러 갔다. 가투소와 캠피즈는 에토를 시카고 북서쪽 주차장으로 안내한 후 그의 머리에 총을 쏘고 현장에서 도주했다.
 
에토는 죽지 않았지만, 조직에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려 하지 않았다.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뒤덮인 그는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몸을 떨고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차 문을 열고 추운 거리로 비틀거리며 나갔다. 가투소와 캠피즈의 흔적은 없었다. 에토는 가까운 약국으로 기어가 구급차를 요청했고, 경찰차가 동행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64세의 그는 머리에 여섯 개의 구멍이 있었고, 수십 년 동안 믿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의 보스 솔라노는 켄 에토가 선고 공판을 앞두고 결국 조직을 배신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피아 조직원들이 법정에 서게 되면 대개 두 가지 선택지를 맞닥뜨린다. 조직에 대한 충성을 지키고 형을 받아들이거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당국과 협력하는 것이다. 에토는 시카고 아웃핏의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불법 도박 사업을 비롯한 조직의 여러 수익 구조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가 법정에서 조직의 운영 방식이나 핵심 인물들의 정보를 털어놓는다면, 이는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위협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었다. 솔라노는 에토가 과거에는 조직에 대한 충성을 지켜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했다. 수십 년간 마피아 세계에서 살아남았던 그도, 중형을 선고받을 위험 앞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FBI와 이미 접촉한 전력이 있는 점도 솔라노의 의심을 키웠다. 결국, 솔라노는 에토가 법정에서 조직을 보호하기보다 자신의 생존을 우선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솔라노는 자신의 명령이 결국 자신을 겨누는 총알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켄 에토와 FBI가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을 붕괴시킨 과정

당시 &quot;일래인 스미스&quot;는 신참 FBI 요원이었다.
당시 "일래인 스미스"는 신참 FBI 요원이었다.

"그들은 나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제 나는 FBI와 함께하겠습니다."

— 켄 에토는 부상에서 회복된 후 일래인 스미스 요원에게 말했다.
 
기적적으로 그는 심한 부상을 피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회복한 켄 에토는 FBI와의 협상을 시작했다.그는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기소 면제를 조건으로 정보 제공을 약속했다. 조직의 배신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일리노이 북부 지방 연방 검찰의 제레미 마골리스 검사는 켄 에토의 제안을 수락했다.그의 안전을 보장하고, 아웃핏 붕괴의 결정적 정보를 얻는 것은 검찰에게도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에토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마골리스는 그의 신뢰를 얻어내야 했다. 단순히 법률적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인간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에토가 조직의 비밀을 숨김없이 털어놓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더 이상 유대감은 없습니다."

— 켄 에토가 말했다
 

"당신이 그 유대를 깨뜨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먼저 당신을 배신했습니다. 당신을 죽이려 함으로써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끝까지 입을 다물 것 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도, 나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을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그들은 당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일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제레미 마골리스 검사는 켄 에토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마골리스의 말은 에토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동안 조직에 바친 충성과 헌신은 인종적 편견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조직의 배신은 단순한 배신이 아닌,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였다. 마골리스는 에토의 분노와 배신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감정을 이용해 에토가 조직의 비밀을 털어놓도록 유도했다. 이 순간, 켄 에토의 마음은 완전히 돌아섰다.
 
켄 에토는 결국 정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내면에는 배신감과 복수심,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FBI에 아웃핏의 조직원 명단, 조직 내에서의 그들의 역할, 그리고 불법 사업 운영 방식 등 조직의 내부 정보를 상세히 제공했다. 켄 에토의 정보는 FBI가 수십 명에 달하는 아웃핏 조직원 및 관련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그들의 범죄 행각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그는 직접 법정에 서서 아웃핏 핵심 간부들에 대한 증언을 했다. 켄 에토의 증언은 조직의 불법 행위를 법정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아웃핏의 핵심 조직원 15명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켄 에토의 증언은 아웃핏과 결탁한 부패 경찰관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증언을 통해 부패 경찰관들이 아웃핏의 불법 활동을 묵인하고 지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는 부패 경찰관들의 체포 및 기소로 이어졌다.
 

켄 에토가 법정에서 시카고 마피아 &quot;아웃핏&quot;에 대한 증언을 하고 FBI 보호아래 법정을 나오고 있다.
켄 에토가 법정에서 시카고 마피아 "아웃핏"에 대한 증언을 하고 FBI 보호아래 법정을 나오고 있다.

 
 


새로운 삶, 그리고 영원한 우정

 
약속대로 당국은 켄 에토에 대한 모든 혐의를 취하했다. 그는 "조 타나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고, 증인 보호 프로그램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남은 생애 동안 그는 과거를 숨기고 조용히 살았다. 그리고 2004년 1월 28일, 84세의 나이로 그는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켄 에토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일래인 스미스는 그가 거주하던 하와이를 방문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우정은 변함없이 남아있었다.

"일래인, 당신이 나를 위해 해준 모든 것에 영원히 감사할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친구였고, 내가 믿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에토는 이제 더 이상 마피아 조직원도, FBI 정보원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친구로서 그의 진심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일래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 만남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특별했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