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도날드 하면 떠오르는 것은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반세기가 넘도록 그 상징과도 같았던 빨간 머리 광대, 로널드 맥도날드이다. 1963년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로널드는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었다. 그는 장난감, 수많은 공개 행사, 그리고 TV 광고를 넘나들며 빠르게 대중문화의 강력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처럼, 로널드는 맥도날드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얼굴이었다. 일각에서는 전 세계 가상 캐릭터 인지도를 따졌을 때 산타클로스 바로 다음이 로널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의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영원할 것 같던 로널드의 시대는 예고 없이 막을 내렸다. 그의 모습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 것이다. 당시 언론과 맥도날드 측은 이 변화를 2016년 미국을 중심으로 번졌던 때아닌 '광대 공포' 현상과 연결 지었다. 이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섬뜩한 광대 복장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목격담(일부는 허위나 장난)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된 사건이었다.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할 맥도날드의 로널드는 더 이상 예전처럼 환영받기 어려운, 오히려 불편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맥도날드 측에서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여" 로널드의 활동을 자제시킨다는 발표는 표면적으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였던 셈이다. 하지만 로널드가 우리 곁에서 사라진 그 이면에는 훨씬 복합적이고 깊은 사연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로널드 맥도날드의 탄생

로널드 맥도날드가 등장하기 전,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 어린이 TV계를 주름잡던 광대가 있었다. 바로 '보조(Bozo the Clown)'였다. 보조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되어 지역 방송사마다 다른 배우가 연기했는데, 워싱턴 D.C. 지역 방송국에서 보조를 연기하며 아이들의 사랑을 받던 인물 중 하나가 바로 훗날 NBC 방송의 간판 기상 캐스터가 되는 윌러드 스콧이었다. 그러던 1963년, 보조의 TV 쇼가 예기치 않게 막을 내리자, 당시 이 쇼의 워싱턴 지역 스폰서였던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운영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린이 고객을 사로잡을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의 결론은 명확했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광대 캐릭터를 만들자!"
이렇게 해서 탄생한 맥도날드의 첫 공식 마스코트가 바로 '로널드 맥도날드, 햄버거를 좋아하는 광대'였다. 그리고 이 초대 로널드를 연기한 사람이 바로 윌러드 스콧이었다. 그의 초기 모습은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세련된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맥도날드 종이컵으로 코를 만들고, 음료수 디스펜서를 허리에 '마법 벨트'처럼 두르고, 머리에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밀크셰이크가 담긴 쟁반을 모자처럼 이고 있었다. 다소 엉성하고 기묘해 보일 수 있는 이 모습은 그러나,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이후 로널드는 몇 차례의 디자인 변경을 거쳐 우리에게 익숙한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교차하는 점프슈트와 빨간 가발, 과장된 신발 차림으로 변신했다. 그는 맥도날드 TV 광고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며, 보라색 몸집의 그리머스(Grimace), 햄버거를 훔쳐 달아나는 햄버글러(Hamburglar) 등 '맥도날드 랜드'의 다채로운 캐릭터들과 함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로널드의 인기는 1990년대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한다. 유명 애니메이션 'Rugrats'를 제작한 스튜디오 클라스키 추포(Klasky Csupo)가 로널드와 친구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VHS 비디오 시리즈 '웩키 어드벤처 오브 로널드 맥도날드'를 제작해 맥도날드 매장에서 판매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1991년에는 미국 CBS 방송의 황금 시간대 크리스마스 특집극 '세상을 바꾼 소원'의 진행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당시 일부 언론과 시청자들로부터 "이건 30분짜리 노골적인 맥도날드 광고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막강했다.

2016년 전 세계를 강타한 '광대 공포' 현상
2016년 8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한 마을에서 '광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숲으로 유인하려 한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광대 공포(Clown Scare)'가 미국 사회를 뒤덮었다. 이 소식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이후 미국 전역과 캐나다, 영국 등 해외 곳곳에서 섬뜩한 광대 복장을 한 이들이 밤길이나 학교 근처, 외딴 장소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는 목격담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물론 이 중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사람들의 불안 심리가 만들어낸 허위 신고, 혹은 악의적인 장난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광대 복장을 하고 흉기를 소지하거나, 사람들을 위협하고, 학교에 대한 테러 협박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체포되는 사례들도 발생했다. 이러한 미디어의 연이은 보도는 사회 전체에 '광대 = 공포'라는 인식을 각인시키고 상당한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야 할 맥도날드의 로널드는 더 이상 예전처럼 환영받기 어려운, 오히려 불편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광대 공포가 절정에 달했던 2016년 10월, 맥도날드는 결국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NBC 뉴스를 통해 공개된 서면 성명은 다음과 같았다:
"최근 지역사회에서 불거진 광대 출몰과 관련된 분위기를 감안하여, 당분간 맥도날드사는 로널드 맥도날드의 지역 행사 참여를 신중하게 고려하겠습니다."
이는 사실상 로널드 맥도날드의 공개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그해 12월 뉴멕시코주 루이도소에서 열린 한 퍼레이드에 로널드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이는 일회성 이벤트에 가까웠고 결코 그의 공식적인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은 아니었다. 이 시점을 전후로 TV 광고나 대규모 프로모션 캠페인에서 로널드의 모습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익살스러운 얼굴을 찾아보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광대 공포라는 사회적 현상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잦아들었지만, 맥도날드의 상징이었던 로널드는 마치 그 공포와 함께 무대 뒤편으로 영원히 퇴장한 것처럼 보였다.
로널드 맥도날드의 퇴장,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로널드 맥도날드의 퇴장이 단순히 2016년의 '광대 공포' 때문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의 입지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여러 요인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었다는 정황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소비자 단체 '기업책임 인터내셔널(CAI - Corporate Accountability International)'은 맥도날드를 향해 날 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핵심은 로널드를 앞세운 어린이 대상 마케팅이 소아 비만과 같은 건강 문제를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시카고 트리뷴의 2016년 보도에 따르면, CAI는 맥도날드 주주총회까지 찾아가 로널드를 과거 담배 회사 캐멀(Camel)의 마스코트였던 '조 캐멀(Joe Camel)' - 선글라스를 낀 의인화된 낙타 캐릭터로, 특유의 '쿨'한 이미지를 내세워 청소년들의 흡연을 부추긴다는 극심한 비판 끝에 1997년 퇴출된 - 에 빗대며 그의 즉각적인 퇴출을 강력하게 요구했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맥도날드는 로널드가 상업적 마케팅보다는 '로널드 맥도날드 하우스 자선재단(RMHC)'의 홍보대사로서 역할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RMHC는 병원 치료를 받는 아픈 어린이와 그 가족들에게 병원 근처 임시 숙소를 무료 또는 저렴하게 제공하는 등 의미 있는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맥도날드는 2014년 로널드에게 카고 바지와 캐주얼한 재킷을 입히는 등 복장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변신을 시도했다. 여전히 로널드가 건재하며 '현역'임을 보여주려는 노력이었지만, 그의 상징과도 같은 크고 낡은 광대 신발은 그대로 남겨두면서 어딘가 어정쩡한 타협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결국 '현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로널드의 현재 위상은 사실상 '장기 휴가'나 다름없어 보인다.
2021년, 맥도날드는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로널드는 여전히 아픈 아이들을 돕느라 바쁘다"는 근황을 전한 것이 그에 대한 거의 마지막 공식 언급이었고, 그의 이름으로 운영되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역시 2021년 이후 업데이트가 완전히 멈춘 상태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급감했던 상황도 그의 활동 반경이 줄어드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보라색 괴물, '그리머스'의 등장

로널드 맥도날드가 사실상 자취를 감춘 사이, 맥도날드는 의외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로널드의 오랜 친구이자 정체를 딱히 규정하기 어려운 보라색 캐릭터, 그리머스(Grimace)다. 과거 맥도날드랜드의 조연에 머물렀던 그를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전면에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2023년 여름, 미국에서 그리머스의 생일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출시된 '그리머스 셰이크(Grimace Shake)'였다. 이 기묘한 보라색 셰이크는 출시 직후 틱톡(TikTok)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젊은 세대들이 셰이크를 마신 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쓰러지거나 엉뚱한 상황을 연출하는 '그리머스 셰이크 챌린지' 밈(Meme)이 바이럴이 되어 번져 나간 것이다. 이는 MZ세대의 놀이 문화를 제대로 관통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맥도날드의 '그리머스 띄우기'는 계속되는 모양새다. 2025년 세인트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 시즌에는 그리머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록색 친척 캐릭터 '엉클 오그리머시(Uncle O'Grimacey)'까지 등장시켜, 맥도날드의 봄 시즌 대표 메뉴인 '섀머록 셰이크(Shamrock Shake)' 홍보에 활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리머스와 관련 캐릭터를 활용한 최근의 마케팅은 과거 로널드가 상징했던 어린이 중심의 접근법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어린 시절 맥도날드와 그리머스에 대한 막연한 추억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와, 밈(Meme)과 온라인 챌린지에 열광하는 MZ세대의 향수와 유머 코드를 정교하게 겨냥한 새로운 전략으로 풀이된다. 맥도날드가 더 이상 '어린이들의 친구'가 아닌, 'MZ세대의 문화 코드'를 공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변화인 셈이다.
로널드 맥도날드의 미래
그렇다고 로널드 맥도날드가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의 모습이 예전처럼 매장 앞이나 TV 광고에서 매일같이 보이진 않지만, 맥도날드는 여전히 특별한 순간마다 그를 소환하고 있다. 실제로 바로 작년(2024년)만 해도 휴스턴에서 열린 고교 농구 올스타전 '맥도날드 올아메리칸 게임'이나 시카고 도심 레이싱 'NASCAR 컵 시리즈', 그리고 미국 최대 명절 행사 중 하나인 11월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같은 굵직한 이벤트에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해 존재감을 알렸다. 불과 두어 달 전인 올해 2025년 2월 18일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커다란 광대 신발을 딱딱 맞부딪치는 짧은 영상이 맥도날드 공식 유튜브 쇼츠 채널에 올라와 팬들의 반가움을 사기도 했다.
맥도날드 측은 로널드의 현재 역할이나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간헐적인 등장은 그가 완전히 '은퇴'했다기보다는, '장기 휴가' 중이거나 혹은 그의 역할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과거처럼 어린이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친근한 마스코트에서 나아가, 이제는 맥도날드의 자선 활동(RMHC)이나 대규모 스폰서십 이벤트 등을 상징하는, 좀 더 제한적이고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과연 한때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앞 벤치에 앉아 특유의 환한 미소로 아이들을 맞이했던 로널드가 언젠가 다시 광고 전면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날이 올까? 아니면 이대로 가끔씩 이벤트성으로 얼굴을 비추다, 결국은 우리 기억 속 한 장면으로 기억되게 될까? 그 답은 오직 시간만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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