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몽키 스패너: 그 이름의 유래

OUTNUMBERED 2025. 5. 19. 13:19
몽키 스패너는 손잡이 중앙의 나사 휠을 돌려 턱 사이 간격을 조절해 볼트를 조여주는 다목적 수리 도구다.
몽키 스패너는 손잡이 중앙의 나사 휠을 돌려 턱 사이 간격을 조절해 볼트를 조여주는 다목적 수리 도구다.

 
집 안의 수도꼭지가 고장 났거나 자전거 페달이 헐거워졌을 때, 우리는 흔히 공구통을 뒤적이다 묵직한 몽키 렌치를 찾게 된다. 투박한 생김새의 이 도구는 꽉 조여진 볼트도 손쉽게 풀어내고, 헐거워진 부품도 단단히 고정시켜주는 가정의 소소한 수리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생긴다. 왜 이 렌치에는 '원숭이(monkey)'라는 다소 엉뚱한 이름이 붙었을까? 이 이름의 유래를 찾아가다 보면, 의외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몽키 스패너’의 탄생 – 누가 만들었을까?

'몽키 렌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특정한 도구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이 이름 아래 다양한 형태의 조절식 렌치들이 존재한다. 원래의 정통 몽키 렌치는 견고한 금속 손잡이와 직각을 이루는 두 개의 매끈한 평행한 턱을 갖추고 있으며, 중앙에 위치한 나사를 돌려 이 턱 사이의 간격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고전적인 디자인은 19세기 중반부터 큰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실용적인 형태다. 이와 구별되는 유사 공구들도 있다. 턱 부분에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이빨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은 '파이프 렌치'라고 부르는데, 이는 주로 둥근 파이프나 관을 단단히 물어 돌리는 데 특화되어 있다. 파이프 렌치는 톱니 모양 덕분에 미끄러지지 않고 강한 회전력을 전달할 수 있지만, 물체 표면에 자국을 남긴다는 단점이 있다.
 

1900년대 초 ‘Crescent Tool Company’가 잡지에 실은 빈티지 광고. 상단에는 브랜드 로고와 함께 니켈 도금 드롭포지드 플라이어 사진이, 하단에는 “Crescent Universal Plier—50¢”라는 문구와 원형·삼각형·철선까지 잡아낸다는 만능 기능, 불만족 시 환불 보장 등을 강조한 설명이 빼곡히 담겨 있다.
1900년대 초 ‘Crescent Tool Company’가 잡지에 실은 광고. 상단에는 브랜드 로고와 함께 니켈 도금 드롭포지드 플라이어 사진이, 하단에는 “Crescent Universal Plier—50¢”라는 문구와 원형·삼각형·철선까지 잡아낸다는 만능 기능, 불만족 시 환불 보장 등을 강조한 설명이 빼곡히 담겨 있다.

 
또 다른 변형으로는 손잡이와 거의 나란히 달린 활처럼 생긴 턱이 가로로 움직이는 '크레센트 렌치'(또는 '조절식 렌치')가 있다. 이 도구는 1907년 스웨덴 기계공 요한 요한손이 특허를 얻은 디자인에서 발전한 것으로, 몸체가 더 얇고 좁은 공간에서도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크레센트 툴 컴퍼니(Crescent Tool Company)의 상품명을 따서 '크레센트 렌치'라고 널리 불리게 되었다. 일상에서는 이런 기술적인 구분 없이 이 모든 종류의 조절식 렌치를 그냥 '몽키 렌치'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확히 첫 번째 설명한 형태, 즉 평행한 두 턱이 직각으로 달리고 나사로 간격을 조절하는 도구만을 진정한 '몽키 렌치'라고 볼 수 있다.
 
이 유용한 도구를 누가 처음 발명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는 1858년 무렵 미국 볼티모어의 기계공 찰스 멍키(Charles Moncky)가 발명했다는 것이다. "멍키가 만든 렌치가 몽키 렌치가 되었다"는 이 설명은 이름의 유래로 듣기에 딱 들어맞는다. 비슷한 이야기로, 1854년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공구 제작 회사 '베미스 앤드 콜'에서 일하던 '멍크(Monck)'라는 직원이 조절 가능한 턱을 고안했고, 동료들이 '멍크의 렌치'라고 부르다가 자연스럽게 '몽키 렌치'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런던의 찰스 멍크, 미국의 멍키, 멍케이, 먼키 등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차례로 발명자로 주장되었지만, 그 어느 쪽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에서 이미 1807년 공구 카탈로그에 'monkey wrench'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1826년 경찰 기록에는 '몽키 렌치 도난 사건'까지 기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당시 기록은 상세하지 않아 정확한 사건 개요는 알 수 없지만, 이 사실은 '몽키 렌치'라는 이름이 특정 발명가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보다 훨씬 이전부터 널리 쓰였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19세기 초에도 몽키 렌치는 도난의 대상이 될 만큼 일상생활에서 가치 있는 도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좀 더 신뢰할 만한 단서는 1852년에 출판된 『애플턴 기계·공학 사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1835년 스프링필드의 발명가 솔라이먼 메릭(Solymon Merrick)을 '스크루 렌치'(몽키 렌치와 매우 유사한 형태)의 발명자로 소개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멍크(또는 멍키) 전설이 바로 그 스프링필드에서 시작되었다는 점과 시기가 겹친다는 것이다. 도구 역사 연구가 빈스 스테이튼의 저서 『원숭이가 몽키 렌치를 발명했나?』(1996)에 따르면, 메릭은 작업장에서 '몽키'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동료 작업자와 함께 렌치를 개량했으며, 공장 사람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몽키의 렌치"라고 불렀다고 한다.
 
언어적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도 있다.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키 렌치(key wrench)'와 구분하기 위해 '논-키 렌치(non-key wrench)'라고 부르던 것이 필기하거나 말하는 과정에서 점차 '몽키 렌치'로 발음이 변형되었다는 주장이다. 영어에서 'non-key'와 'monkey'가 발음상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설명이다. 결국 역사적 증거를 종합해 볼 때, 19세기 중반에 솔라이먼 메릭이 현대적 형태의 렌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을 가능성은 크지만, '몽키 렌치'라는 이름 자체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영국에서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도구의 탄생과 이름의 기원은 각기 다른 여정을 걸어온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묵직한 쇳덩이 하나에도 이처럼 다층적인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몽키 스패너'를 둘러싼 씁쓸한 도시 전설

잭 존슨 '갤버스턴의 거인'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짐 크로 법'이 한창이던 시대에 흑인 선수 최초로 헤비급 세계 챔피언(1908-1915)이 되었다.
'잭 존슨'은 '갤버스턴의 거인'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짐 크로 법'이 한창이던 시대에 흑인 선수 최초로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잭 존슨'은 '갤버스턴의 거인'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짐 크로 법'이 한창이던 시대에 흑인 선수 최초로 헤비급 복싱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최근 소셜 미디어에서는 20세기 초 위대한 흑인 복서 잭 존슨(1878–1946)이 몽키 렌치를 발명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 주장에 따르면, 백인들이 존슨의 발명 공로를 가로채고 인종차별적 함의를 담아 일부러 '원숭이(monkey)'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부분적으로는 사실에 기반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역사적 사실과 오해가 뒤섞인 안타까운 도시 전설이다. 잭 존슨은 실제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헤비급 세계 챔피언으로, 당시 만연했던 극심한 인종차별 속에서도 큰 성취를 이룬 인물이었다. 1910년 '위대한 백인의 희망'이라 불리던 제임스 제프리스를 격파했을 때는 미국 전역에서 백인들의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그의 성공은 당시 '짐 크로우' 법으로 대표되는 인종 분리 사회에 큰 도전이었다.
 
이후 그는 '만 법(Mann Act)'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이는 그의 백인 여성과의 관계를 겨냥한 정치적 탄압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10년 제정된 만 법, 즉 '백인 노예 매매 방지법(White-Slave Traffic Act)'은 본래 인신매매와 성매매 근절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로는 서로 다른 인종의 남녀가 사랑하여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것을 억압하는 데 악용된 악법이었다. 특히 당시 미국 사회는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관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기에, 만 법은 이러한 관계를 단속하고 처벌하는 데 표적 삼아 부당하게 적용되었다. 결국 존슨은 부당한 탄압을 피해 해외로 망명길에 올랐고, 1920년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돌아와 레번워스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는 비운을 맞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감옥에서 그는 숨겨진 기계적 재능을 꽃피웠다. 동료 수감자들과 협력하여 기존 파이프 렌치의 불편함을 개선, 잡기 쉽고 분해까지 용이한 혁신적인 렌치를 설계했고, 마침내 1922년 그 디자인으로 특허를 출원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다.
 

'잭 존슨'이 설계한 조립식 파이프 렌치 도면.
'잭 존슨'이 설계한 조립식 파이프 렌치 도면.

 
당시 한 기업이 이 특허에 2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30만 달러 이상)를 제안했지만, 존슨은 이를 거절하고 직접 'J.A.J. 렌치 회사'를 설립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는 사업가로서의 그의 비전과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일화다. 안타깝게도 당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이 회사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몽키 렌치'라는 이름이 잭 존슨을 인종차별적으로 비하하기 위해 붙여졌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몽키 렌치'라는 명칭은 존슨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인 19세기 초반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영국의 공구 카탈로그와 경찰 기록에서 1800년대 초반에 이미 이 용어가 등장한다는 점은 이 명칭이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잭 존슨이 혁신적인 렌치를 발명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발명품은 기존의 '몽키 렌치'와는 기술적으로 다른 파이프 렌치의 한 종류였다. 그럼에도 이처럼 왜곡된 이야기가 퍼진 배경에는 당시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잭 존슨이 겪었던 수많은 불의가 있다. 역사 속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흑인 발명가들의 업적에 대한 관심과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현대적 열망이 이러한 도시 전설로 표출된 것이다.
 
진정한 역사적 영웅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실과 오류를 구분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잭 존슨은 링 위에서 뿐만 아니라 기계 발명가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인물이며, 그의 진정한 업적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몽키 스패너를 던지다’라는 관용구

몽키 렌치의 유래를 탐색하다 보면, 언어라는 흥미로운 영역에서 그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애써 준비한 일이 엉뚱한 방해로 망쳐질 때, 우리는 흔히 "다 된 밥에 재 뿌린다"고 표현하는데, 영어로는 바로 "throw a (monkey) wrench in the works"라고 한다. 몽키 렌치와 같은 공구를 기계 장치(the works)에 던져 넣으면, 그 즉시 작동이 멈춰 버리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이 비유가 얼마나 적절한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관용구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 기록 기준으로 1907년에 처음 등장하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유사한 의미로 "throw a spanner in the works"라는 표현이 더욱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멈춰 선 톱니바퀴 틈에 끼어 버린 낡은 몽키 렌치—영어 표현 ‘throw a monkey wrench’(일을 망치다)를 그대로 시각화한 한 사진.
멈춰 선 톱니바퀴 틈에 끼어 버린 낡은 몽키 렌치—영어 표현 ‘throw a monkey wrench’(일을 망치다)를 그대로 시각화한 한 사진.

 
관용구 연구가 게리 마틴에 따르면, 이 비유는 산업혁명 시대 공장 풍경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당시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던 기계 장치에 실수로 렌치가 끼어들거나 떨어지면, 톱니바퀴나 피스톤이 망가져 공장 전체의 작업이 마비되는 상황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영국식 표현인 “스패너 인 더 웍스”는 1828년 뉴질랜드 문헌에서 이미 발견될 정도로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일상 언어 속에서 ‘원숭이(monkey)’는 묘하게도 도구나 기계와 관련된 표현에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정비사를 친근하게(때로는 약간 낮잡아보는 뉘앙스로) 부르는 “그리스 몽키(grease monkey)”라는 표현은 1928년경 처음 나타났다. 이는 기름때로 손과 옷이 늘 더러운 정비사의 모습이 나무를 오르내리는 원숭이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작은 도구를 들고 좁은 공간에서 일하는 어린 견습공들을 “몽키 보이(monkey boy)”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왜 하필 “원숭이”일까?

왜 유독 원숭이가 공구와 자주 연결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다. 생물학적으로 일부 영장류가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하지만, 렌치를 만들거나 설계하는 원숭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어쩌면 호기심 많고 재주 있는 원숭이의 이미지가 도구를 다루는 인간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이러한 표현들이 생겨났을 수도 있다. 혹은 단순히 ‘몽키’라는 발음 자체가 여러 기계 관련 용어와 언어적으로 잘 어울려 다양한 표현으로 확장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몽키 렌치는 단순한 공구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산업 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우리의 언어 깊숙이 스며들어 관용적인 표현의 일부가 되었으며, 때로는 사회적 오해와 흥미로운 도시 전설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만큼이나, 이 평범해 보이는 도구는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고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