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모렐로 패밀리: 107번가 갱의 탄생
19세기 말, 뉴욕 이스트 할렘. 제노비스 패밀리의 역사는 시칠리아 코를레오네 출신 이민자 주세페 모렐로로부터 시작된다. "클러치 핸드", "늙은 여우"라는 별명처럼, 한쪽 손을 잃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냉혹함과 뛰어난 조직 장악력으로 '107번가 갱'을 결성했다. 107번가 갱은 초기에는 소규모 절도, 갈취, 공갈 등 비교적 단순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점차 돈세탁, 위조지폐 유통, 불법 도박 등 조직적이고 규모가 큰 범죄로 영역을 확장했다. 모렐로는 특히 위조지폐 사업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이민자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뉴욕 마피아의 초기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이들은 단순한 길거리 갱단을 넘어, 훗날 뉴욕을 넘어 미국 전역을 뒤흔들 거대 범죄 조직, 제노비스 패밀리의 초석이 되었다.
격동의 시대: 세력 확장과 피의 전쟁
1903년, 모렐로 패밀리는 급격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바로 리틀 이태리에서 악명 높았던 마피아 보스, 이그나지오 "늑대" 루포와의 동맹이었다. 루포는 모렐로의 사촌 처남이기도 했는데, '늑대'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직을 이끌며 리틀 이탈리아 내에서 공포의 대상이었고, 상인들에게 보호세를 갈취하고, 각종 범죄를 저지르며 부를 축적했다. 모렐로는 루포와의 동맹을 통해 리틀 이탈리아 내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더 넓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 동맹은 필연적으로 다른 범죄 조직과의 충돌을 야기했다. 특히, 뉴욕 브루클린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던 나폴리 출신 이민자들로 구성된 카모라 조직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카모라는 여러 개의 독립적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불법 도박, 매춘, 고리대금업 등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모렐로 패밀리의 급성장은 카모라 조직에게 위협으로 다가왔고, 두 조직은 뉴욕의 암흑가를 지배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1910년대 중반, 마침내 '마피아-카모라 전쟁' 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단순한 영역 다툼을 넘어, 시칠리아 출신 마피아와 나폴리 출신 카모라 간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다. 초기에는 양측 모두 서로의 조직원들을 암살하고, 사업장을 공격하는 등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특히, 1916년에 발생한 니콜라 테라노바의 암살은 전쟁의 양상을 더욱 격화시켰다. 니콜라 테라노바는 주세페 모렐로의 이복형제이자, 모렐로 패밀리의 핵심 간부였다. 그는 뛰어난 전투 능력과 잔혹함으로 조직 내에서 '언더보스'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브루클린에서 카모라 조직원들에게 기습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이 사건은 모렐로 패밀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복수심에 불타는 모렐로는 카모라 조직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전쟁은 장기화되면서 양측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조직원들이 살해되었고, 뉴욕 거리는 연일 총성과 폭력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모렐로 패밀리는 끈질긴 투쟁과 더불어, 몇 가지 유리한 요인을 바탕으로 점차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첫째, 모렐로 패밀리는 카모라 조직보다 더 단일화된 지휘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효율적인 의사 결정과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했다. 둘째, 카모라 조직 내부에서 분열과 배신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부 카모라 조직원들은 모렐로 패밀리에 매수되거나, 경찰에 정보를 제공하며 내부 분열을 일으켰다. 셋째, 1910년대 후반, 미국 정부는 범죄 조직 소탕 작전을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카모라 조직의 주요 간부들이 체포되거나 사망하면서 조직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결국, 수년간의 격전 끝에 모렐로 패밀리가 '마피아-카모라 전쟁'에서 최종 승리했다. 이 승리는 모렐로 패밀리에게 뉴욕 암흑가 전체를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제노비스 패밀리로 이어지는 강력한 마피아 조직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금주법 시대
1920년대, 미국 전역에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마피아 조직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다. 모렐로 패밀리 역시 밀주 제조 및 유통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시기, 주세페 "조 더 보스" 마세리아가 조직의 새로운 리더로 떠올랐다. 주세페 "조 더 보스" 마세리아는 모렐로의 뒤를 이어 모렐로 패밀리의 보스가 된 인물이다. 그는 시칠리아 출신으로, 금주법 시대에 밀주 사업을 통해 조직을 크게 성장시켰다. 뚱뚱한 체구와 달리 민첩하고 잔인한 성격으로, '조 더 보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으로 인해 내부 갈등을 초래했고, 결국 부하인 러키 루치아노에게 배신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마세리아는 찰스 "러키" 루치아노, 프랭크 코스텔로, 비토 제노비스, 조 아도니스, 알버트 아나스타시아 등 젊고 야심만만한 갱스터들을 대거 영입하며 조직을 현대화하고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마세리아는 밀주 사업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마피아 범죄인 갈취, 고리대금업, 도박, 매춘 등 다양한 불법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조직의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장했다. 그러나 권력이 커질수록 마세리아의 독단적이고 전횡적인 운영 방식은 조직 내부에 심각한 불만을 야기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출신 지역인 시칠리아 출신 조직원들을 노골적으로 편애하고, 다른 지역 출신, 특히 이탈리아 본토 출신 갱스터들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칠리아 섬 북서부 해안의 항구 도시, 카스텔람마레 델 골포 출신의 또 다른 강력한 마피아 리더, 살바토레 마란자노 ("리틀 시저")가 마세리아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마란자노는 마세리아와 마찬가지로 금주법 시대에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전통적인 마피아 가치와 규율을 중시하며, 마세리아의 독선적인 운영 방식과 "미국화"된 범죄 방식에 공공연히 반감을 드러냈다. 마란자노는 마세리아에게 불만을 품은 갱스터들을 규합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두 거대 조직 간의 긴장은 점차 고조되어, 결국 피할 수 없는 전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1930년, 마침내 두 세력 간의 갈등은 카스텔라마레세 전쟁이라는 전면전으로 폭발한다. 이 전쟁은 단순한 세력 다툼을 넘어, 구세대 마피아(마세리아)와 신세대 마피아(마란자노), 그리고 시칠리아 출신과 비 시칠리아 출신 간의 복잡한 갈등 양상을 띠었다. 전쟁 초기, 마세리아는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마란자노는 치밀한 전략과 암살 작전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켜 나갔다. 양측 모두 수십 명의 조직원을 잃는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고, 뉴욕 전역은 공포에 휩싸였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러키 루치아노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마세리아의 독단과 구시대적인 방식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그는, 자신의 생존과 조직의 미래를 위해 마란자노와 비밀리에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1931년 4월, 루치아노는 자신의 부하들을 시켜 코니아일랜드의 한 식당에서 마세리아를 암살한다. 이 사건으로 카스텔람마레세 전쟁은 마란자노의 승리로 끝나는 듯 보였다. 마란자노는 스스로를 "보스 중의 보스"로 선언하고, 뉴욕 마피아를 재편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권력욕과 구시대적인 방식은 루치아노를 비롯한 신세대 갱스터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루치아노는 마란자노마저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몇 달 후 그의 사무실에서 마란자노를 암살한다.
카스텔람마레세 전쟁은 뉴욕 마피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였다. 이 전쟁을 통해 구세대 마피아는 몰락하고, 러키 루치아노를 중심으로 한 신세대 마피아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루치아노는 전국적인 마피아 연합체인 '위원회'를 창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범죄 조직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며 제노비스 패밀리의 기틀을 다졌다.
러키 루치아노의 개혁과 ‘다섯 패밀리’
1931년 마란자노마저 암살되면서, 루치아노는 옛 질서였던 “보스 오브 보스” 체제를 폐지하고 마피아 협의회를 창설하는 혁신을 단행했다. 뉴욕의 주요 이탈리아계 조직은 다섯 개 패밀리로 재편되었고, 각 패밀리 보스들이 협의회를 통해 상호 조정과 분쟁 해결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부터 뉴욕 마피아는 본격적으로 “파이브 패밀리” 시대에 접어들었고, 모렐로-마세리아 계보의 조직은 보스 러키 루치아노의 이름을 따 루치아노 패밀리로 불리게 되었다.
루치아노는 현대 마피아 구조를 정립한 개혁자로 평가된다. 그는 전통과 혁신을 조화시켜 패밀리 운영을 기업처럼 체계화했고, 다른 민족 범죄조직과도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1936년 매춘 조직범죄로 체포되어 장기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면서 패밀리 경영에서 멀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요청으로 항만 보안을 지원한 대가로 1946년 가석방되었지만, 곧 이탈리아로 추방되며 미국 땅을 떠나야 했다. 그 후로는 프랭크 코스텔로가 조직을 대리 지휘하며 사실상 보스로 활동했다. 코스텔로는 정치인과 유착하여 (“프라임 미니스터”) 수상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정치력과 사업 감각을 발휘했지만, 이러한 부와 명성은 라이벌 비토 제노비스의 표적이 되었다.
권력 장악: 암살 시도와 경쟁자 제거, 제노비스 시대의 개막
1957년 5월, 비토 제노비스는 자신의 오랜 라이벌이자 조직의 보스였던 프랭크 코스텔로를 제거하기 위한 대담한 결정을 내린다. 그는 자신의 심복이자 악명 높은 킬러였던 빈센트 "친" 지간테에게 코스텔로 암살을 지시했다. 지간테는 코스텔로를 향해 총을 발사했지만, 다행히 코스텔로는 목에 가벼운 총상만 입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이 암살 시도는 코스텔로에게 큰 충격과 경고를 주었고, 결국 그는 제노비스에게 보스 자리를 넘겨주고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같은 해, 제노비스에게 또 다른 호재가 찾아온다. 바로 강력한 경쟁 조직이었던 망가노 패밀리(후에 감비노 패밀리)의 보스, 알버트 아나스타시아가 뉴욕 맨해튼 파크 쉐라톤 호텔 이발소에서 부하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나스타시아의 피살은 정확한 배후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카를로 감비노, 혹은 비토 제노비스가 연관되어 있다는 설이 유력했다. 경쟁 조직의 수장이 제거되면서, 제노비스는 뉴욕 마피아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할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코스텔로의 은퇴와 아나스타시아의 사망이라는 두 가지 사건은 제노비스에게 권력 장악의 길을 열어주었다. 루치아노 패밀리는 공식적으로 제노비스 패밀리로 명칭을 변경했고, 비토 제노비스는 명실상부한 뉴욕 마피아의 최정점에 서게 되었다. 이로써 뉴욕 마피아는 새로운 시대, 즉 제노비스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아팔라긴 회합의 실패와 제노비스의 몰락
1957년 11월 14일, 뉴욕 주 북부의 작은 시골 마을 아팔라킨. 제노비스 패밀리의 보스 비토 제노비스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전국의 마피아 조직 간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역사적인 대규모 회합을 소집했다. 이른바 "아팔라친 회합" 이었다. 당시 제노비스는 코스텔로 암살 미수, 아나스타시아 암살 등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막 뉴욕 마피아의 정점에 오른 상황이었다. 그는 이 회합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마약 거래, 도박, 노조 장악 등 전국적인 범죄 사업에 대한 지침을 하달하려 했다.
전국 각지에서 100여 명에 달하는 마피아 보스들과 핵심 간부들이 아팔라친에 있는 조셉 바바라의 호화 저택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 은밀한 모임은 뜻밖의 암초에 부딪힌다. 평소 마피아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뉴욕 주 경찰 에드거 크로스웰이 대규모 차량 행렬과 수상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연방 수사관들과 함께 바바라의 저택을 급습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경찰의 등장에 회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피아 조직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숲 속으로 도주하거나, 정장 차림으로 밭을 가로질러 달아나는 등 필사적으로 체포를 피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60여 명이 넘는 마피아 조직원들이 체포되었고, 그들의 호화로운 차량과 막대한 현금이 압수되었다. 체포된 인물 중에는 비토 제노비스 본인을 비롯하여, 조셉 보난노, 카를로 감비노, 산토 트라피칸테 시니어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거물급 마피아 보스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아팔라친 회합의 실패는 미국 사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마피아의 실체가 전국적인 규모로, 그것도 한꺼번에 드러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언론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마피아의 존재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미국 정부는 마피아를 국가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FBI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제노비스에게 아팔라친 회합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던 시도는 오히려 마피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꼴이 되었고, 그의 리더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1959년 제노비스는 헤로인 밀매 혐의로 기소되어 15년 형을 선고받고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옥중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패밀리를 통제하려 했지만, 예전과 같은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결국 1969년, 제노비스는 심장마비로 옥중에서 사망하며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권력 공백과 임시 보스 체제: 리더십 부재와 내부 갈등의 심화
1969년 비토 제노비스가 옥중 사망하면서, 제노비스 패밀리는 갑작스러운 권력 공백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제노비스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냉혹한 통치 방식으로 조직을 장악해왔지만, 후계자를 명확히 지명하지 않은 채 사망했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와 갈등이 불가피했다.
제노비스의 사망 직후, 패밀리의 고위 간부들은 즉각적인 후계자를 결정하는 대신, "Acting Boss"(임시 보스) 체제를 통해 조직을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공식적인 보스의 권한을 대행하는 임시 지도자를 내세워 조직의 안정을 도모하고, 후계 구도를 둘러싼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초대 임시 보스로는 앤소니 "팻 샐리" 살레르노가 선출되었다. 살레르노는 뉴욕 이스트 할렘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오랜 경험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제노비스와 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나 조직 장악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는 겉으로는 패밀리의 리더 역할을 수행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여러 간부들에게 분산되어 있었고, 조직 내에서는 끊임없이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다.
살레르노의 뒤를 이어 토마스 에볼리가 임시 보스 자리에 올랐다. 에볼리는 뉴저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인물로, 제노비스의 신임을 받던 간부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에볼리 역시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내부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특히, 필립 "베니 스퀸트" 롬바르도, 빈센트 "친" 지간테 등 다른 강력한 간부들은 에볼리의 권위에 공공연히 도전하며, 차기 보스 자리를 노리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처럼 임시 보스 체제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혼란을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내부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각 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비방했으며, 심지어 폭력 사태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은 제노비스 패밀리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외부의 위협에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노비스가 구축했던 강력한 중앙 집권적 리더십은 사라지고, 패밀리는 분열과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필립 "베니 스퀸트" 롬바르도의 등장과 그림자 통치 (1970년대 초)
1970년대 초, 제노비스 패밀리는 여전히 권력 공백과 내부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임시 보스 체제는 리더십 부재를 해결하지 못했고, 여러 세력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분열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밀리 내에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 필립 "베니 스퀸트" 롬바르도가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롬바르도는 1920년대부터 제노비스 패밀리(당시 루치아노 패밀리)에서 활동해 온 베테랑 갱스터였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폭력성보다는, 조용하고 신중하며 치밀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다. "베니 스퀸트"(Benny Squint, 사팔뜨기 베니)라는 별명은 그의 외모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의 진짜 강점은 눈에 띄지 않게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력, 즉 "그림자 통치"(Shadow Rule) 방식에 있었다.
롬바르도는 공식적인 보스 자리에 오르는 대신, 패밀리 내 주요 의사 결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다른 간부들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그는 전면에 나서서 주목받는 것을 극도로 꺼렸으며, 언론과의 접촉도 철저히 피했다. 이러한 은밀한 행보는 FBI의 수사망을 피하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롬바르도의 통치 스타일은 제노비스와는 정반대였다. 제노비스가 강력한 카리스마와 폭력을 통해 조직을 통제했다면, 롬바르도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조직원들의 신뢰를 얻고, 배후에서 조용히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불필요한 폭력이나 갈등을 피하고, 조직의 안정과 수익 창출에 집중하는 실리적인 노선을 추구했다.
롬바르도의 그림자 통치 아래, 제노비스 패밀리는 점차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는 불법 도박, 고리대금업, 노조 장악 등 전통적인 마피아 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합법적인 사업에도 투자하며 조직의 자금원을 다변화했다. 또한, 다른 마피아 패밀리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힘쓰며, 불필요한 분쟁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롬바르도의 이러한 통치 방식은 제노비스 패밀리가 1970년대의 혼란기를 극복하고, 1980년대 빈센트 지간테 시대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제노비스 패밀리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랭크 "Funzi" 티에리의 짧은 통치와 RICO 법의 철퇴 (1981년)
1981년, 필립 "베니 스퀸트" 롬바르도는 70대 중반의 나이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사실상 은퇴를 선언한다. 롬바르도는 자신이 직접 후계자를 지명하는 대신, 패밀리 내 투표를 통해 새로운 보스를 선출하도록 했다. 이 투표에서, 오랜 기간 제노비스 패밀리의 고위 간부로 활동해 온 프랭크 "Funzi" 티에리가 새로운 보스로 선출되었다.
"Funzi"(멍청이)라는 다소 모욕적인 별명과는 달리, 티에리는 상당한 지능과 사업 감각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는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불법 도박, 고리대금업, 주식 사기 등 다양한 범죄 활동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또한, 티에리는 롬바르도의 은퇴 이전부터 이미 패밀리의 일상적인 운영을 상당 부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보스 등극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티에리의 통치 기간은 매우 짧았다. 그가 보스 자리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연방 정부는 마피아를 비롯한 조직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제정된 RICO 법(조직범죄 및 부패방지법) 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RICO 법은 조직범죄의 배후 세력, 즉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조직의 운영에 관여하거나 지시를 내린 인물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법률이었다.
FBI는 오랫동안 티에리의 활동을 주시해 왔으며, 그가 제노비스 패밀리의 보스로서 각종 범죄를 지시하고 수익을 챙긴 혐의를 포착했다. 결국 1981년, 티에리는 RICO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듬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는 미국 역사상 마피아 보스가 RICO 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티에리는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87년 암으로 사망하면서 짧고 불명예스러운 통치를 마감하게 된다.
티에리에 대한 RICO 법 적용은 이후 마피아 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FBI는 RICO 법을 활용하여 마피아 조직의 하부 조직원뿐만 아니라, 최고위 간부들까지 기소하고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된 것이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진행된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 작전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제노비스 패밀리를 비롯한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 모두에게 큰 타격을 안겨주었다.
빈센트 "친" 지간테 시대 (1980년대 후반 ~ 2005년)
프랭크 티에리의 몰락 이후, 제노비스 패밀리는 또다시 권력 공백 상태에 빠졌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패밀리의 실권을 장악한 인물은 바로 빈센트 "친" 지간테였다. 지간테는 이미 1957년 프랭크 코스텔로 암살 미수 사건을 주도했던 인물로, 오랜 기간 패밀리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지간테는 이전의 보스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리더십을 선보였다. 그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대신, 철저히 배후에서 조직을 조종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지간테는 정신병 환자 행세라는 기상천외한 전략을 통해 법망을 피해 갔다. 그는 잠옷 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하거나,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등 누가 봐도 정신 이상자로 보일 만한 행동을 연출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Oddfather"(괴짜 보스) 또는 "The Enigma"(수수께끼)라는 별명을 얻게 했다. 그러나 지간테의 기행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그는 이 기상천외한 전략을 통해 수십 년 동안 FBI의 수사와 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 FBI는 지간테가 제노비스 패밀리의 실질적인 보스라는 것을 확신했지만, 그의 정신 이상 증세를 법정에서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소에 번번이 실패했다.
지간테의 교활한 전략과 강력한 리더십 아래, 제노비스 패밀리는 1990년대 뉴욕 마피아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불법 도박, 고리대금업, 노조 갈취, 건설 사업 이권 개입 등 전통적인 마피아 사업뿐만 아니라, 마약 밀매, 주식 조작 등 새로운 범죄 영역에도 손을 뻗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또한, 다른 마피아 패밀리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며, 뉴욕 마피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그러나 지간테의 시대는 동시에 FBI의 끈질긴 추적과 감시를 받는 시기이기도 했다. FBI는 지간테의 정신병 행세가 거짓임을 밝혀내기 위해 도청, 감시, 정보원 활용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결국, 1997년 지간테는 1990년 뉴욕 마피아 5대 패밀리 중 하나인 감비노 패밀리의 부두목 살바토레 그라바노의 증언으로 인해 1997년, 공갈 및 살인 모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3년에는 추가 기소를 통해 사법 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하고, 추가로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지간테는 2005년 연방 교도소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며, 그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 즉 교활함과 비밀스러움으로 무장한 제노비스 패밀리의 운영 방식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제노비스 패밀리의 현재
빈센트 "친" 지간테 사후, 제노비스 패밀리는 또다시 권력 승계와 내부 갈등을 겪었지만, 놀라운 생존력과 적응력을 보여주며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 중 가장 강력하고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남아있다.
2005년 지간테 사망 이후, 제노비스 패밀리는 다니엘 "대니 더 라이언" 레오, 리보리오 "바니" 벨로모 등 여러 명의 보스 대행을 거치며 권력 구조를 재편했다. 이들은 지간테 시대의 비밀주의와 엄격한 규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제노비스 패밀리는 전통적인 마피아 범죄 활동(불법 도박, 고리대금업, 노조 갈취 등)뿐만 아니라, 사이버 범죄, 국제 마약 밀매, 금융 사기 등 더욱 고도화되고 복잡한 범죄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합법적인 사업체(건설, 운송, 폐기물 처리 등)를 통해 자금을 세탁하고, 정치권과 법조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은폐하고 있다.
FBI를 비롯한 사법 당국은 제노비스 패밀리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수사하고 있지만, 이들은 쉽게 꼬리를 잡히지 않고 있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철저한 비밀 유지와 내부 규율, 그리고 교활한 전략을 통해 수십 년 동안 법망을 피해 왔으며, 여전히 뉴욕의 지하 세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제노비스 패밀리의 역사는 단순한 범죄 조직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들의 어두운 성공 신화이자,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숨겨진 권력 구조, 그리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범죄의 양상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들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뉴욕의 어두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직 운영과 내부 구조: 지휘 체계와 은밀한 권력 승계
뉴욕 마피아 제노비스 패밀리는 전통적인 코사 노스트라의 위계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은밀함을 극대화한 독특한 운영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패밀리의 기본 구조는 보스를 정점으로 언더보스, 콘실리에리, 카포, 솔저, 어소시에이트로 이어지는 계층적 피라미드 형태다.
- 보스(Boss)는 조직의 절대적인 결정권자다. 모든 범죄 사업에서 몫을 취하며 최종 명령을 내린다.
- 언더보스(Underboss)는 2인자로서 보스를 보좌하고 조직의 일상 운영을 감독한다. 때로 보스의 친척이나 차기 승계자가 이 자리에 오르며, 보스 부재 시 대리 통치하기도 한다.
- 콘실리에리(Consigliere)는 보스의 고문 격으로 중요한 조언을 제공하는 막후 참모다. 조직 내 분쟁 조정이나 대외 교섭에 관여하며, 일반적으로 서열 3위로 신망이 두텁고 중립적인 인물이 맡는다.
- 카포(Capo)는 몇몇 솔저들을 거느린 팀장이다. 각 카포는 자신만의 파벌(크루)을 이끌며 구역별로 범죄사업을 관리하고, 번 돈의 일부를 상납한다.
- 솔저(Soldier)는 정식으로 입단한 “메이드 맨(made man)”으로, 마피아 조직의 기본 단원을 말한다. 솔저들은 조직을 위해 범죄를 수행하고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 어소시에이트(Associate)는 엄밀히 말해 패밀리의 정식 구성원은 아니지만 함께 범죄 활동을 하는 협력자들이다. 이들은 이탈리아계가 아니거나 조직에 입단식을 거치지 않은 인물로, 솔저들의 감독 하에 일하면서 수익을 분배한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이러한 전형적 구조를 따르면서도, 권력자의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특유의 전략을 구사해 왔다. 1960년대 이후 법망이 좁혀오자, 실제 보스는 뒤로 숨고 다른 인물을 앞세우는 이른바 “페이크 보스” 또는 “프론트 보스” 제도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예컨대 1969년 비토 제노비스 사후 보스로 오른 필립 “베니 스퀸트” 롬바르도는 FBI를 혼란시키기 위해 여러 측근을 조직의 얼굴마담으로 내세웠다. 1972년 토머스 에볼리, 1981년 프랭크 티에리, 1980년대 초반 안토니 살레르노 등이 잇따라 겉보기 보스 역할을 맡았지만, 실제 막후에서는 롬바르도와 빈센트 지간테 등 핵심 인물들이 패밀리를 움직였다. 이러한 위장 전략 덕분에 제노비스 패밀리는 수십 년 간 수사당국의 눈을 피하며 “투명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내부 권력 이동은 주로 은밀한 합의나 때로는 암살과 같은 극단적 방식으로 이뤄졌다. 패밀리 보스 자리가 공석이 되거나 교체가 필요할 때에는, 고위 간부들이 비밀리에 모여 후계자를 추대하거나 위원회 체제로 과도기를 관리했다. 보스가 수감 중일 때는 대행 보스를 임명하여 조직 운영을 이어가고, 보스가 지시를 내릴 땐 메신저 즉 전달자를 통해 명령을 하달하는 등 철저히 간접 통치가 이뤄졌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이와 같은 은밀한 운영 방식을 통해 조직의 생존을 도모하는 한편, 수뇌부는 법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데 주력해 왔다. 또한 패밀리는 합법 기업을 활용한 자금 세탁과 사업 확장에도 능숙했다. 레스토랑, 바, 건설회사, 부동산 등 겉보기엔 합법적인 기업체들을 소유하거나 배후 조종함으로써 범죄수익을 깨끗한 돈으로 바꾸고 영향력을 넓혔다. 예컨대 한때 제노비스 조직은 맨해튼 부동산 개발과 콘크리트 업계를 암암리에 장악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겼는데, 이러한 합법 비즈니스 위장술은 단속을 피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조직 내부 분쟁은 콘실리에리의 중재 아래 “회의” 형식으로 해결하거나, 필요시 협의회(Commission)의 판정에 맡겨 분쟁이 외부로 표출되지 않도록 관리했다. 피의 숙청은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되었지만, 때론 조직 안위를 위해 불가피할 때에는 실행되었다.
결론적으로, 제노비스 패밀리는 전통적인 마피아 계층 구조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위장 전술과 조직 내부의 엄격한 규율을 통해 조직을 빈틈없이 운영해왔다. 이러한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통치 방식이 바로 제노비스 패밀리가 뉴욕에서 가장 강력한 마피아 조직으로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범죄 활동
제노비스 패밀리는 뉴욕 범죄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범죄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박과 마약 같은 전통적 범죄부터, 주식 사기나 사이버 도박 등 현대적 범죄까지 시대에 맞춰 활동 영역을 변화시켜왔다.
- 도박: 제노비스 패밀리에게 불법 도박은 오랫동안 핵심적인 수입원이었다. 스포츠 도박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설 마권, 불법 복권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도박 사업을 통해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였다. 20세기 중반, 뉴욕 일대의 지하 도박장을 장악했던 제노비스 패밀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온라인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온라인 스포츠 베팅 사이트를 개설하고, 해외에 서버를 두는 방식으로 법 집행 기관의 추적과 단속을 교묘하게 피해 나갔다. 또한, 도박 사업에서 발생하는 다른 조직과의 갈등은 폭력적인 충돌보다는 협상과 이권 조정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불필요한 유혈 사태를 막고, 사업의 지속적인 번영을 꾀하기 위한 제노비스 패밀리만의 생존 전략이었다.
- 고리대금업: 뉴욕 마피아 패밀리 중에서도 가장 탄탄한 자본력을 자랑했던 제노비스 패밀리는 고리대금업을 통해 꾸준히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들은 자금난에 시달리는 영세 사업자나 도박으로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을 주요 타겟으로 삼았다. 조직원들은 이들에게 접근해 급전을 빌려주는 대가로 폭리에 가까운 고금리를 요구했다. 채무자가 빚을 제때 갚지 못하면 협박과 폭력은 물론, 사업체의 지분을 강제로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부동산 시장의 허점을 이용, 채무자들에게 주택 담보대출을 받게 한 뒤 그 돈으로 빚을 갚게 하는 방식의 신종 모기지 사기 수법까지 동원되었다.
- 마약 밀매: 제노비스 패밀리의 마약 사업은 20세기 중반 비토 제노비스 시절, 헤로인 밀매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이후 마약 단속 강화와 조직 내 위험 부담 증가로 인해, 패밀리는 표면적으로 마약 사업에서 손을 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소시에이트(준조직원 또는 협력 조직)를 통해 코카인 등 각종 마약 유통에 깊숙이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 마약 시장을 장악한 멕시코 카르텔과의 관계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카르텔로부터 마약을 대량으로 공급받고, 뉴욕 등 대도시 내에서 최종 유통를 담당하는 파트너십 형태로 마약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 금융 사기 및 주가 조작: 1990년대 이후, 제노비스 패밀리는 단순한 폭력 조직을 넘어 화이트칼라 범죄 영역으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혔다. 특히 뉴욕 증권시장을 무대로, 저가 주식을 대량 매집한 후 허위 정보를 유포해 주가를 폭등시킨 뒤 팔아치우는 "펌프 앤 덤프" 방식의 주가 조작, 보험 사기, 신용카드 위조 및 부정 사용 등 각종 금융 범죄를 통해 막대한 부당 이득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제노비스 패밀리는 전통적인 마피아 조직의 경계를 넘어, 러시아계 범죄 조직 등 신흥 범죄 세력과도 손을 잡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과거의 적과도 동맹을 맺는 마피아의 실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 노동조합 장악: 제노비스 패밀리는 뉴욕의 핵심 산업과 관련된 여러 노동조합에 깊숙이 침투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뉴욕 항만 노동자 조합(ILA), 트럭 운송 노조, 건설 노조 등이 이들의 주요 표적이었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이들 노조에 조직원을 심거나, 노조 간부들을 매수하여 노조의 의사 결정에 개입했다. 이를 통해 노동력 공급을 통제하고, 파업 여부를 결정하며, 기업들로부터 금품을 갈취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부당 이득을 챙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맨해튼 자비츠 컨벤션 센터 건설 과정에서 벌어진 콘크리트 납품 담합 및 노조 동원 사건이다. 제노비스 패밀리는 이 과정에서 공사 계약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거액의 리베이트를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노조를 통해 기업들에게 용역비를 부풀려 청구하거나, 채용 청탁 대가로 금품을 받는 등 도시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군림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 국제 범죄 네트워크: 제노비스 패밀리는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했지만, 그 영향력은 미국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이들은 다양한 국가의 범죄 조직들과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각종 국제 범죄에 관여해 왔다. 특히, 시칠리아 마피아와는 뿌리 깊은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마약 밀매 사업을 함께 해왔다. 냉전 종식 이후에는 동유럽, 특히 러시아 마피아와 손잡고 휘발유 밀수 탈세, 금융 사기 등 새로운 범죄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또한, 멕시코 카르텔을 비롯한 중남미 마약 조직들과는 코카인 유통망을 공유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범죄 조직인 은드랑게타와도 특정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약하자면, 제노비스 패밀리는 단순한 폭력 조직이 아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범죄 수단을 끊임없이 진화시켜 온 조직이다. 전통적인 마피아 범죄는 물론, 첨단 금융 범죄에 이르기까지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또한, 필요하다면 경쟁 조직이나 다른 국가의 범죄 집단과도 손을 잡는 유연성과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며, 범죄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온 것이 이들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제노비스 패밀리의 유산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
뉴욕의 다섯 마피아 패밀리 중에서도 제노비스 패밀리는 줄곧 “최강”이라 불려왔다. 2020년대 현재까지도 FBI와 범죄학자들은 제노비스 패밀리를 미국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안정적인 마피아 조직으로 평가한다. 조직원 숫자와 지휘계통 규모가 크고 견고하며, 뉴욕과 뉴저지의 광범위한 범죄 사업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패밀리들을 돌아보면, 보나노 패밀리는 내부 배신 사태로, 콜롬보 패밀리는 내분으로, 갬비노 패밀리는 존 고티 시대의 미디어 과잉 노출로, 루케제 패밀리는 보스가 수사당국에 협조함으로써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반면 제노비스 패밀리는 큰 내분이나 조직 와해 없이 일관된 지휘 체계를 유지했고, 음지에 머무르며 언론 노출을 피하는 전략으로 살아남았다. 때문에 많은 범죄 분석가들은 이 조직을 “마피아계의 메이저리그”라 부르며, 규율이 엄격하고 전문화된 엘리트 조직으로 본다.
과거 전성기 시절 누렸던 압도적인 권세는 아닐지라도, 제노비스 패밀리는 앞으로도 뉴욕 범죄 지하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존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FBI와 검찰의 지속적인 압박과 감시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미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생존 전략을 조정해 온 경험이 있다. 앞으로 제노비스 패밀리는 직접적인 범죄 활동으로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다른 범죄 조직과의 협력 관계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보다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새롭게 부상하는 범죄 세력이나 해외 마약 카르텔과의 경쟁 속에서도, 제노비스 패밀리는 특유의 비밀스러운 운영 방식과 조직 내부의 강력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뉴욕 지하세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글은 "[3부] 보나노 패밀리”로 이어진다.
'범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카고 마피아의 중간 보스 일본인과 그를 추적한 신참 FBI 요원의 이야기 (19) | 2025.03.09 |
---|---|
[3부] 보나노 패밀리 (Bonanno Crime Family) (26) | 2025.03.08 |
[1부] 미국을 주름잡던 뉴욕 마피아 '5대 패밀리'는 누구인가? (21) | 2025.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