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마지막 미개척지, 그린란드가 글로벌 패권 경쟁의 새로운 무대로 급부상하고 있다. 2025년 재취임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매입에 대한 관심은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덴마크는 "그린란드는 매매 대상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극권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희토류,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의 보고로서 그린란드가 지닌 지정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제적 열망이 교차하는 미스터리한 땅, 그린란드. 수세기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 거대한 섬의 11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들여다보자.
1.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인구 밀도를 가진 곳
그린란드 원주민들은 이곳을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의 '칼랄리트 누나트(Kalaallit Nunaat)'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 거주 인구는 6만 명도 채 되지 않아, 지구상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서해안 주요 도시에 모여 살고 있으며, 가장 작은 정착지 중 하나인 카시미웃(Qassimiut)의 인구는 20명에 불과하다. 수도인 누크에는 약 1만 7천 명이 거주하며, 이곳에는 그린란드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단 두 개의 신호등이 존재한다. 험준한 얼음 지형 때문에 도시 간 도로 연결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이동 수단은 주로 항공이나 선박에 의존한다.
2. 그린란드의 땅의 80%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
그린란드는 남극 대륙에 이어 지구에서 두 번째로 방대한 빙하를 품고 있는 얼음의 왕국이다. 이 거대한 빙하는 약 70만 제곱마일(약 180만 제곱킬로미터)에 걸쳐 그린란드 전체 면적의 약 80%를 덮고 있으며, 그 평균 두께는 1,500m, 최대 두께는 무려 3,000m에 달한다. 이 빙하 덩어리가 모두 녹는다면 전 세계 해수면을 7.2m나 상승시킬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담수를 품고 있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그린란드 지표면의 대부분은 빙하의 무게로 인해 눌려 해수면과 같거나 그 아래에 위치하는데, 만약 빙하가 모두 사라진다면 그린란드는 가장자리는 높고 중앙부는 낮은, 도넛 모양의 지형을 드러낼 것이다.
이 거대한 빙하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다. 빙하는 중심부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어 계속해서 외곽으로 이동하며 빙하 지형을 형성한다. 그린란드 빙하 중 가장 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은 단연 '세르메크 쿠얄레크(Sermeq Kujalleq)'다. '일루리사트 아이스피요르드' 또는 '야콥스하븐 빙하'로도 알려진 이 거대한 빙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빙하 중 하나로, 여름철에는 하루에 최대 45m까지 움직이는 경이로운 속도를 자랑한다. 이 빙하에서 분리되는 빙산은 연간 460억 톤에 달하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일으킨 빙산 역시 이곳에서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린란드에서 빙하가 덮지 않은 약 20%의 영토는 대부분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험준한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피오르드와 가파른 절벽이 특징인 이 지역은 그린란드의 58개 정착지 대부분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농업이 가능한 비옥한 땅은 전체 면적의 약 1%에 불과하여, 주로 남서부 해안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극한의 추위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린란드의 일부 지역에서는 뜻밖에도 자연 온천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온천들은 흔히 생각하는 화산 활동이 아닌 지각 마찰과 지열로 인해 생성된 것으로, 우피르나비앗(Uunartoq)같은 몇몇 온천은 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38°C의 따뜻한 물을 품고 있어 얼음 왕국 속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처럼 그린란드는 거대한 빙하와 험준한 산맥, 그리고 숨겨진 온기가 공존하는 극단적 대비의 땅이다.
3. 그린란드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속한다
그린란드는 지리적으로 북아메리카 대륙과 같은 지각판 위에 자리하고 있어, 엄밀히 말하면 독립된 대륙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근간을 이루는 캐나다 순상지(Canadian Shield)와 지질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해저 180m 깊이에 위치한 해저 능선을 통해 물리적으로도 이어진다. 캐나다 순상지란 북미 대륙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거대한 선캄브리아기 지질구조로, 25억~40억 년에 이르는 지구 최고령 암석층 중 하나다. 거대한 방패 모양으로 캐나다 동부와 중부, 미국 북부 일부를 아우르며, 빙하기를 거치며 지표가 깎여 오늘날의 넓고 평평한 지형을 이루게 되었다. 이 캐나다 순상지는 대부분 10억 년 이상의 장구한 시간을 견뎌온 선캄브리아기 암석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린란드와 북미 대륙이 지질학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4. 인간은 약 4500년 전 그린란드에 처음 도착하였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은 약 4500년 전인 2500 BCE경 캐나다에서 서부 그린란드로 건너온 사카 (Saqqaq)문화 사람들이었다. 사카크 문화는 그린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고고학 문화로, 작은 규모의 이동 생활을 하며 주로 바다표범과 물고기를 사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도르셋(Dorset)문화가 500 BCE부터 1500 CE까지 그린란드를 점령하며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도르셋 문화는 사카크 문화보다 발전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순록 사냥과 고래잡이 등을 통해 더욱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르셋 문화는 캐나다 북극 지역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린란드 남부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현재 그린란드 이누이트는 약 1000년 전 북부 그린란드에 도착한 툴레(Thule)문화의 후손들이다. 툴레 문화는 알래스카에서 기원하여 그린란드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래잡이 기술을 발전시켜 그린란드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들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뛰어난 적응력과 기술로 그린란드에 정착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5. 그린란드 일부 지역에서는 개를 반입할 수 없다
그린란드 북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순수한 썰매개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외부 개의 반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그린란드 썰매개는 수 세기 동안 극한 환경에 적응해 온 독특한 품종으로, 인간과의 협력을 통해 생존해왔다. 이 지역 주민들은 썰매개를 단순한 동물이 아닌, 삶의 동반자이자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여기며 그 혈통을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6. 그린란드는 여름과 겨울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그린란드는 여름과 겨울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곳이다. 여름철에는 태양이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지속되며, 겨울철에는 몇 달 동안 해를 전혀 볼 수 없는 극야 현상이 나타난다. 이처럼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를 감상할 기회가 많다는 것은 그린란드의 또 다른 매력이다.
7. 그린란드는 복잡한 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린란드는 1721년 덴마크-노르웨이 선교사들의 정착 이후 덴마크의 통치를 받아왔다. 1979년 자치 정부를 수립하였고, 2009년에는 자치권을 더욱 확대하는 등 꾸준히 자율성을 확보해왔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외교와 국방 문제는 덴마크가 담당하고 있으며, 그린란드의 공식 화폐 역시 덴마크 크로네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자치령이라는 복잡한 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8. 그린란드에서는 다양한 야생 동물을 만날 수 있다
그린란드는 북극여우, 순록, 북극곰, 사향소 등 다양한 야생 동물의 서식지이다. 특히, 그린란드 북동부의 광활한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인 노스이스트 그린란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다양한 야생 동물들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또한 230종이 넘는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며, 바다에서는 혹등고래, 흰긴수염고래, 벨루가, 범고래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은 여행객이라면 전설 속 바다 유니콘으로 알려진 나르왈을 목격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9. 그린란드는 기후 변화 연구의 최전선이다
그린란드는 기후 변화 연구의 중심지다. 여름철 평균 기온은 5~10도 정도로 비교적 온화하지만, 겨울철에는 남부 지역이 -7도, 북부 지역은 무려 -34도까지 떨어지는 극심한 기온 차를 보인다. 특히 그린란드의 빙하는 지구 기후 시스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2년 위성 사진 분석 결과, 그린란드 전체 빙상의 97%에서 녹은 흔적이 발견되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16년에는 기록적인 고온 현상까지 겹치면서 빙하가 녹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린란드 빙하의 변화는 지구 전체 해수면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의 양이 증가하고, 이는 전 세계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시킨다. 해수면 상승은 해안 지역 침수, 농경지 감소, 인프라 파괴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그린란드의 빙하가 지난 25년 동안 6~7배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빙하 감소는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시켜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린란드는 기후 변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이자, 인류가 직면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연구 지역이다.
10. 그린란드는 냉전 시대부터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덴마크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은 그린란드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개입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51년, 덴마크와 미국은 '그린란드 방위 협정'을 체결하여 미군이 그린란드에 주둔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이 협정을 통해 미국은 그린란드 서북부에 툴레 공군 기지(2023년 피투피크 우주 기지로 개명)를 건설하고 북극 방어의 핵심 기지로 활용하였다. 툴레 공군 기지는 현재까지도 운영 중인 미국 공군의 최북단 기지로, 탄도 미사일 조기 경보 시스템 운영 및 우주 감시 등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소련 간의 군비 경쟁이 심화되면서 그린란드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미국은 그린란드의 얼음층 아래에 '캠프 센추리(Camp Century)'라는 비밀 기지를 건설하여 소련을 겨냥한 핵미사일 배치를 시도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얼음층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현재 해당 기지의 유적은 얼음 아래에 남아 있다.
11. 그린란드의 면적은 우리 생각보자 작다
우리가 아는 그린란드는 착시와 오해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16세기 플랑드르의 지도학자 메르카토르가 고안한 '메르카토르 도법'은 항해사들의 항로 계산을 돕기 위해 직선으로 경선을 표현하는 투영법인데, 이 과정에서 극지방으로 갈수록 면적이 심하게 왜곡되는 단점이 있다. 이 도법이 만들어낸 거대한 착시 현상으로 인해, 그린란드는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모습으로 우리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 지도 속 그린란드는 아프리카와 맞먹는 크기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겨우 1/14에 불과한 규모다. 오스트레일리아의 1/3, 미국 본토의 1/4 정도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그린란드를 갈망하는가?
미국은 오랫동안 그린란드를 자국의 안보 영역에 포함시키려는 전략적 관심을 보여왔는데, 이는 주로 군사적, 방위적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그린란드는 북극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핵심 관문이자, 북미와 유럽을 잇는 대륙간 항공로의 중요한 중간기착지로서 전략적 가치가 높다. 특히 냉전 시대에는 소련의 대륙간 핵미사일 공격을 조기에 탐지하고 방어하는 전초 기지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51년 설립된 툴레 공군기지(Thule Air Base)는 현재까지도 미 우주군의 중요한 미사일 조기경보 시스템과 우주 감시 네트워크의 핵심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그린란드는 미국에게 매력적인 대상이다. 그린란드는 희토류를 비롯한 막대한 양의 미개발 천연자원을 품고 있으며,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자원 개발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북극해 항로 개척 가능성은 물류 혁명과 함께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린란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북극 진출을 견제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린란드는 지리적, 문화적, 군사적, 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복잡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덴마크,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가운데, 앞으로 이 지역의 국제 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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