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18년간 산 이방인: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의 기묘한 이야기

OUTNUMBERED 2025. 2. 27. 13:37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18년을 산 이방인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18년을 산 이방인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

 

 

1988년, 한 남자가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 1에 발을 들였다. 여권과 난민 증명서를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란 출신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 그는 이후 무려 18년 동안, 그곳을 자신의 집으로 삼아 살아간다.

 

나세리는 국제법의 사각지대에 갇힌 존재였다. 난민 지위는 얻었으나, 이를 증명할 서류가 없었다. 그 어떤 나라도 그를 받아들일 수도, 추방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공항 직원들 사이에서 '알프레드 경(Sir Alfred)'이라는 엉뚱한 별명으로 불리며, 점차 공항의 명물이 되어갔다.

 

그의 기구한 이야기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2003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판권을 사들여 2004년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톰 행크스가 연기한 빅토르 나보르스키의 낭만적인 이야기 뒤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고독한 현실이 가려져 있었다. 나세리가 샤를 드골 공항과 맺은 기묘한 인연은 영화보다 훨씬 더 길었고, 그 끝은 한없이 애처로웠다.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벼랑 끝에 내몰린 한 인간의 생존 본능과 그를 외면한 현대 사회의 냉혹함이 빚어낸, 기이하고도 슬픈 한 편의 드라마다.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는 누구인가?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는 1945년 이란의 마스제드 솔레이만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확인하기 어렵다. 나세리가 수년에 걸쳐 상반된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2003년 뉴욕 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그는 때때로 어머니가 영국인이라고도, 스웨덴인이라고도 말했으며, 한때는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는 사실이나 페르시아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나세리는 테헤란에서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청년기에 접어들며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나세리는, 가족에게 버림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고 말했지만, 가디언지는 그가 영국에서 형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완전한 단절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 시기에 그는 테헤란 대학교에서 학생 시위에 참여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란 비밀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나세리는 훗날 자신이 당시 이란의 국왕이었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의 독재와, 친서방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에 투옥, 고문, 추방되었다고 주장했지만, 가디언지는 그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 시기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세리가 조국 이란과 영원히 결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란을 등지고 유럽으로 떠났으며, 1981년 벨기에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수년간 유럽을 자유롭게 여행하던 나세리. 하지만 1980년대 후반, 파리에서 여권과 난민 증명서를 잃어버렸다. 그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영국은 증빙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했다. 결국 그는 씁쓸하게 샤를 드골 공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1988년,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는 샤를 드골 공항 1터미널에서, 국제법의 사각지대에 갇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다.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서의 18년

메프란 카리미 나세리의 샤를 드골 동항에서의 일상.
메프란 카리미 나세리의 샤를 드골 동항에서의 일상.

 

 

하루가 몇 달이 되고, 몇 달이 몇 년이 되면서,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는 샤를 드골 공항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했다. 프랑스 당국은 그가 불법적으로 입국했다고 주장했지만, 그를 받아줄 다른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추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세리는 그냥 공항에 남았다.

 

그의 새로운 삶은 매우 규칙적이었다. 매일 아침, 나세리는 공항 화장실에서 세면을 하고, 빨래한 옷가지를 가방 위에 널어 말렸다. 맥도날드는 그의 단골 식당이었다. 아침에는 맥모닝, 점심에는 필레 오 피쉬. 한결같은 메뉴였다. 남는 시간에는 (때로는 공짜로 얻은) 신문을 읽거나, 음료수 병뚜껑을 모으고, 1,000페이지가 넘는 일기장에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공항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아요. 매일 활기차고, 분주하며,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1999년, 나세리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나세리는 공항 직원들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영국 이민국 직원들이 서류에 실수로 적은 '알프레드(Alfred)' 또는 '알프레드 경(Sir Alfred)'이라는 이름은, 그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직원들은 그에게 식권을 나눠주었고, 승무원들은 일등석 승객들이 남긴 세면도구를 챙겨주었다.

 

세상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 편의 다큐멘터리가 그의 삶을 조명했고, 2003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그의 이야기 판권을 사들였다. 그리고 2004년,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이 탄생했다. 영화 속 빅토르 나보르스키(Viktor Navorski)는 고국에서 발생한 쿠데타 때문에 뉴욕 JFK 공항에 발이 묶인다. 나세리처럼 공항 생활에 적응해 가지만, 나보르스키에게는 공항을 떠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세리는 달랐다. 그는 공항에서의 삶에 더없이 만족하는 듯 보였다.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의 이야기는 스티븐 스필벌그 감독의 "더 터미널" 이라는 영화로 재탄생 하였다.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의 이야기는 스티븐 스필벌그 감독의 "더 터미널" 이라는 영화로 재탄생 하였다.

 

탈출과 귀환, 그리고 마지막 안식

 

수년 동안,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샤를 드골 공항의 한 의사는 그가 벤치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염려했고, 그의 친구가 된 티켓 판매원은 "그가 바깥세상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999년, 마침내 나세리에게 공항을 떠날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프랑스 당국은 그에게 신분증을 제시했다. 서명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세리는 서류에 자신이 '이란인'으로 명시된 것과, '알프레드 경'이라는 새 이름이 빠진 것에 불만을 품고 서명을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공항 의료 책임자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나세리는 이 거품 세계, 즉 공항이라는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마침내 서류를 받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11년 동안 기다려 온 일이 몇 분 만에 끝나버린다면, 그 허탈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2006년, 나세리는 결국 샤를 드골 공항을 떠났다. 건강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그는, 스필버그에게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판권을 넘기고 받은 돈으로 호스텔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항에서의 18년은 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 다시 공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22년 11월 12일,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는 2터미널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샤를 드골 공항 측은 그의 사망 후 발표한 성명에서 "수년 동안 나세리를 최대한 보살폈지만, 그가 이곳을 떠나 진정한 안식처를 찾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그의 마지막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고, 또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 했던, 바로 그곳, 공항이었다.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의 생전 마지막 모습.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의 생전 마지막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