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 특히 지금 40대나 50대쯤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이소룡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어릴 적에 그의 영화를 보면서, 화면 밖에서까지 울려 퍼지는 그 묘한 기합 소리를 따라 내질러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었을 거다. 허공을 시원하게 가르는 발차기와 강렬한 눈빛, 그리고 노란색 전신 트레이닝복은 그 시절 우리 가슴을 벅차 오르게 만들었다. 이소룡은 단순히 액션배우가 아니라, 우상이자 전설이었고, 그가 서른두 살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건 지금도 쉽게 실감나지 않는다.
이소룡은 어떻게 죽었을까? 전설의 죽음에 관한 진실
이소룡, 그는 1973년 7월 20일, 홍콩에서 뇌부종으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단순한 무술 스타를 넘어 영화, 철학, 대중문화 전반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 20세기 문화 아이콘이었다. 특히 동양 무술을 서양에 널리 알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으며,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무술 '절권도'를 창시하여 다섯 편의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렸다. 이미 젊은 나이에 정점에 선 그였기에, 많은 이들은 그의 행보가 오랫동안 이어지며 더 큰 족적을 남길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운명은 가혹했다. 1973년 7월 20일, 이소룡은 홍콩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나이 고작 32세였다.
당시 이소룡은 전 세계를 열광시킨 센세이션이었고, 다방면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그해 여름, "용쟁호투" 후반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 기획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아내 린다와 결혼한 지 8년, 슬하에는 8살 아들 브랜든과 4살 딸 섀넌이 있었다.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였던 이소룡은 평소 두통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로 탓이었을 수도,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1973년 7월 20일 저녁, 이소룡은 두통 완화를 위해 (현재는 단종된) 진통제 '에쿠아제식(Equagesic)'을 복용하고 잠시 눈을 붙였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숨을 거둔 뒤였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소용없었다. 초기 사인은 약물 과민반응에 의한 뇌부종, 즉 뇌가 붓는 증상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최근 일각에서는 열사병이나 과도한 수분 섭취가 뇌부종을 유발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짙게 남아있다. 사망 직후부터 수많은 의혹과 음모론이 제기되었고, 그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그를 사망으로 몰고간 직접적인 원인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소룡의 죽음은 단순한 사인 그 이상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대중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이소룡이 어떻게 무술을 서양에 알리고 스타가 되었나
이소룡은 1940년 11월 27일,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흥미롭게도 그가 태어난 해와 시각은 모두 '용'의 해와 '용'의 시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이는 그의 비범한 삶을 암시하는 듯 그의 일대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버지 이해천은 유명한 홍콩 경극 배우였고, 어머니 그레이스 호(Grace Ho)는 중국인과 영국계 백인의 혼혈이다. 이소룡은 출생 직후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돌아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입문한 이소룡은 아역 배우로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주로 불량 청소년이나 거리의 부랑아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 속 이미지와는 별개로, 10대 시절엔 실제로도 길거리 싸움에 자주 휘말리고, 심지어 지역 폭력 조직과 연루되기도 했다. 자신을 방어하고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그는 13살 무렵부터 전설적인 “엽문”에게서 “영춘권”을 배우기 시작했다.
1959년, 계속되는 싸움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낀 부모는 그를 미국으로 보냈다.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시애틀에 정착한 이소룡은 에디슨 기술 학교(Edison Technical School)를 졸업하고,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 진학하여 철학을 전공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이 배운 무술에 철학을 접목하여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그가 창시한 “절권도”의 토대가 되었다.
이소룡의 카리스마와 출중한 무술 실력은 결국 할리우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TV 시리즈 "그린 호넷" 에서 주인공의 조력자인 '카토(Kato)' 역을 맡게 된 것이다. 비록 드라마는 조기 종영되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청자들에게 이소룡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할리우드에서 동양인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실망한 이소룡은 홍콩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떠난 후 "그린 호넷" 은 홍콩에서 "카토 쇼" (The Kato Show) 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고, 이는 그의 귀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홍콩으로 돌아온 이소룡은 골든 하베스트 (Golden Harvest)와 손잡고 일련의 무술 영화들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당산대형 (The Big Boss) 1971, 정무문 (Fist of Fury) 1972, 그리고 직접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맹룡과강 (Way of the Dragon) 1972, 이 대표작이다. 이 작품들은 그의 무술 철학과 영화적 비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고, 그를 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홍콩과 할리우드 합작 영화이자 그의 유작이 된 용쟁호투 (Enter the Dragon) 1973,는 이소룡을 명실상부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1973년 7월, 이소룡은 32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의 영화 인생도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이소룡이 사망하던 날, 무슨 일이 있었나
이소룡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사실 두 달 전인 1973년 5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용쟁호투>의 후시녹음(ADR) 작업 도중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심한 두통을 호소하고 경련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 의사들은 뇌부종(뇌에 체액이 과도하게 축적돼 부어오르는 현상) 증상을 알아차렸고, 만니톨(mannitol) 치료로 즉시 조치했다. 짧은 입원 끝에 그는 한결 나아졌다. 이소룡은 주변에 “이게 이소룡이 죽을 방식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퇴원 후에는 곧바로 평소 하던 운동 루틴을 재개했고, 엄격히 지키던 식단(채소, 쌀, 생선, 우유로 구성, 빵·정제 밀가루·정제 설탕 거의 불포함)도 그대로 유지했다. 그 뒤로 7월 20일까지는, 간혹 두통을 호소하는 것 외엔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뇌부종에서 회복되는 듯 보였다.
이소룡이 세상을 떠나던 그날, 그는 홍콩에 있었다. 이소룡 영화 상당수가 홍콩에서 제작되곤 했는데, 그날도 제작자 레이몬드 차우(Raymond Chow)와 하루 종일 만남을 갖고 차기 영화에 대해 논의했다. 그날 홍콩은 한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이소룡은 열정적으로 장면 하나하나를 직접 연기해 보이며 의욕이 넘쳤다고 전해진다. 회의를 마치고, 이소룡은 친구이자(혹은 일부 소문에 따르면 내연녀), 대만 출신 배우 베티 팅 페이(Betty Ting Pei)의 아파트로 갔다. 두 사람은 몇 시간 동안 그곳에 함께 있었다. 그러다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고, 그 식사 자리에서 영화 계약 관련 이야기를 최종 조율하려고 했다. 저녁 7시 30분쯤,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야 할 즈음에 이소룡이 두통을 호소했다. 베티 팅 페이는 그에게 에쿠아제식(Equagesic) 한 알을 건넸다. 아스피린과 메프로바메이트(meprobamate)라는 진정제가 섞인 일반적인 진통제였다. 그 약을 먹은 뒤, 이소룡은 잠깐 누워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그가 내려오지 않자, 팅 페이가 올라가 보니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급히 레이몬드 차우에게 연락해 함께 깨워보려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의사를 불러 10분간 더 살려보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구급차로 근처 병원에 이송했을 때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다.
충격에 빠진 세상, 이소룡은 어떻게 죽었나
외상 흔적이 없어 부검을 진행한 결과, 이소룡의 뇌가 평소보다 13%나 부어오른 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레이몬드 차우는 이소룡 사망 원인이 그가 복용한 진통제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주장했고, 부검 결과도 어느 정도 이를 뒷받침하는 듯 보였다. 검시관은 이소룡의 사인을 에쿠아제식 복용으로 인한 두 번째 뇌부종이라고 공식적으로 판정했다. “Death by misadventure(모험적 행동으로 인한 사망)”라고 불렸는데, 이는 ‘사고사(accidental death)’와 달리, 자발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다 사망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다만 당시 에쿠아제식이 일반적으로 위험한 약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았다.이후 여러 차례 추가 조사가 있었지만, 공식 결론은 검시관의 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릴린 먼로처럼, 약물 관련 사인으로 젊은 나이에 떠난 스타들이 그러했듯, “그냥 약 때문에 죽었다”는 설명만으로는 이소룡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소룡의 죽음에 관한 음모론들
이소룡의 친구 척 노리스는 1975년, 그가 복용하던 근육 이완제와의 상호작용으로 이소룡이 사망했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 주장은 “이소룡이 다른 약물을 복용했는가?”라는 논란을 불렀다. 그가 몸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보조제를 쓴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소룡이 성욕을 높이는 강한 약물에 취해 폭력성을 드러내다, 매춘부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심지어 베티 팅 페이가 비밀 결사의 사주를 받아 이소룡에게 독약을 건넨 것이라는 음모론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집단이, 왜 이소룡을 제거하려 했다는 건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밖에도 이탈리아·중국·미국 마피아가 그를 죽였다는 설, 일부 광팬의 범행설, 심지어 가족들까지 연루했다는 음모론 등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하지만 이소룡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힘을 얻은 가설은 ‘이소룡 가문의 저주’ 이야기다.
이소룡의 죽음을 이해하기: 팬들이 오싹한 가설을 믿는 이유
이 ‘이소룡 가문의 저주’가 유명세를 탄 건, 이소룡이 죽고 20년 뒤, 그의 외아들 브랜든 리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이자 무술가로 활동하다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1992년, 스물여덟의 브랜든 리는 상승세에 있었다. 그는 "더 크로우" (The Crow) 에서 에릭 드레이븐 역을 맡아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가던 중이었다. "더 크로우"는 죽임을 당한 록뮤지션이 되살아나, 자신과 약혼녀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는 어두운 분위기의 코믹스 원작 영화다. 고딕 풍의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수극으로, 브랜든 리에게는 큰 도약이 될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영화 촬영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영화 소품으로 사용되는 총에 실탄이 들어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사고였다. 그의 죽음 역시 공식적으로는 사고로 판정됐지만, 음모론은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부자의 이야기는 “이소룡 가문에 저주가 있다”는 괴담에 불을 지폈다.
게다가 누군가 이소룡에게는 태어나기 전 사망한 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이런 미스터리는 더욱 부풀려졌다. 이소룡은 32세라는 이른 나이에 돌연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가 붓는 '뇌부종'이었다. 무엇이 그의 뇌에 부종을 야기했을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열사병'과 '과도한 수분 섭취'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더운 날씨 속 격렬한 운동은 열사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열사병은 뇌 혈관을 손상시켜 뇌부종을 유발한다. 또한, 단시간에 과도한 물 섭취는 체내 나트륨 농도를 급격히 낮추는 '저나트륨혈증'을 유발, 뇌세포로 수분이 몰리며 뇌가 붓게 된다. 여기에 평소 그가 즐겼던 마리화나(대마초), 마약성 진통제, 잦은 과음, 저염식 식단, 과거 신장 문제, 그리고 격렬한 운동 습관까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뇌부종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여러 의혹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어쩌면 이 신화와도 같은 마지막은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이소룡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결말인지도 모른다. “실전을 두려워 말라”던 그의 통찰처럼, 삶의 정점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던 이소룡. 그는 여전히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전설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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