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자고, 아내도 곤히 잠들었는데 정작 나는 눈이 말똥말똥해서 새벽 두 시쯤 결국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왔다. 불은 최소한으로만 켜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켠다.유튜브를 열어보니, 낮 동안 자주 보던 레시피나 일상 브이로그 대신, 정체 모를 썸네일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중 유독 시선을 끄는 영상이 있다. “지구가 속이 비어 있다고?”라는 자극적인 문구 위로, 마치 어딘가로 통하는 문처럼 보이는 그림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사실 이런 음모론이나 괴담 영상을 은근히 즐겨 보는 편이라, 살짝 망설이다 재생 버튼을 누른다. 다소 어설픈 그래픽이 지나가더니, 낮고 신비로운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지구 안에 감춰진 또 하나의 땅. 샴발라가 그곳에서 그대를 기다린다.”
처음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지구가 ‘속이 비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 그런데도 영상은 묘하게 구체적이다. 히말라야의 능선 아래 비밀 입구가 있고, ‘지구 공동설(Hollow Earth Theory)’이라 불리는 흥미로운 개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어디까지 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헛소린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호기심이 동한다. 책장을 넘기듯 영상 속 자료를 하나씩 훑어볼수록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사실 이런 내용을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니지만, 새벽에는 뭔가 특별한 기운이 감돈다. 낮이라면 코웃음을 칠 법한 이야기도 이 시간에는 조금 그럴듯하게 보일 때가 있다. 결국 “이러다 언제 잠들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영상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샴발라’가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지구가 속이 비었다고?
옛날 그리스 신화에도 지하 세계가 나온다. 하데스가 다스리는 음울한 곳, 산 자가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세계. 중세 유럽 설화에는 땅속에 난쟁이나 요정이 산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가 근대에 와서는 “진짜 지구 내부에 거대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학설로 발전한다. 17세기에 에드먼드 핼리 같은 학자들이 지구가 여러 층으로 구성돼 있고, 그 사이에 빈 공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지금 와서 보면 황당해 보이지만, 지진파나 중력장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과학자가 될 수도 있었을 판타지 작가들이 이론을 펼친 셈이다.
이 지구 공동설이 사람들 머릿속에 완전히 자리 잡은 건 의외로 19세기부터다. 그때부터 탐험소설과 모험담이 쏟아졌는데, 대표적으로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이 유명하다. 지하 세계가 푸른 식물들로 뒤덮여 있고, 아득한 호수가 있다는 설정은 당대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론 현대 지구과학에 따르면, 지구 내부는 맨틀과 내핵·외핵이 뒤섞인 밀도 높은 영역이다. 위성으로 중력장을 관측하고, 지진파를 분석해보면 지구가 빈 공간일 리 없다는 건 너무나 분명해진다. 그렇지만 ‘진실’과 ‘이야기의 매력’은 꼭 비례하진 않는다. 과학이 입증한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마음 한쪽에 이상한 기대를 품는다. 혹시… 정말 어디엔가 들어가는 입구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말이다.
히말라야 설산 너머, 샴발라
히말라야 어딘가에 신비로운 도시가 숨어 있다는 전설이 있다. 이름은 샴발라. 티베트 불교나 힌두교 전승에서 등장하는, 평화와 구원이 깃든 이상향이다. “지구가 비어 있다면, 그 속에 샴발라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티베트에는 실제로 "샴발라 지도가 있다”는 전설이 떠돈다. 오래전 수많은 서양 탐험가들이 그곳을 찾겠다며 히말라야를 헤맸지만, 돌아온 건 목숨 걸고 떠난 험난한 여정의 기록뿐이었다.
어떤 스님들은 샴발라가 실제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반면 오컬트나 신지학 쪽에서는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다만 인간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하 세계와 샴발라를 연결해 해석하는 글을 읽어보면, 거의 판타지 소설을 방불케 한다. 무너질 듯 높은 절벽, 눈보라 치는 계곡을 지나면 어느 순간 따뜻한 빛이 깃든 입구가 나타나고, 거기서부터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폭발한다. 끝없이 펼쳐진 땅, 수수께끼의 문명,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리고 시간을 초월한 존재들….
그 누구도 샴발라를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꽤 많은 ‘후일담’들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 누군가는 “티베트의 수도원에서 샴발라로 가는 길을 직접 봤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남극의 빙하 아래로 들어갔더니 갑자기 고원지대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증거는 늘 불분명하거나 합성된 사진뿐이지만, 사람들은 그 막연함에 오히려 더 끌린다.
왜 이렇게 끌리는가
분명히 지구가 공동 구조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천체물리학, 지질학, 각종 실험데이터까지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류는 계속 지하 세계를 상상해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사는 현실이 너무 익숙해서가 아닐까. 아침에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러 가고, 밤에 잠드는 일상은 지겨울 정도로 반복적이다. 하지만 지구 내부 어딘가에는 전혀 다른 세상, 숨겨진 나라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마음을 뛰게 한다. 티베트의 샴발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언젠가 불행과 혼돈이 극에 달했을 때, 샴발라가 모습을 드러내 인류를 구원한다”는 전승을 알고 있다. 거기에 초자연적 신비와 종교적 엄숙함이 겹쳐, 굉장히 매력적인 서사가 만들어진다. 현대인들도 이 전설에 빠져들어, 실제로 명상으로 샴발라에 도달한다는 수행을 하는 ‘뉴에이지 명상 단체’가 곳곳에 생겨났다. 어떤 의미에서 샴발라는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평화의 상징’이 되어버린 셈이다. 어떤 이들은 “나치 독일이 실제로 남극 아래 지하 세계를 발견했다”는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기도 한다. 당연히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 서사가 흥미로운 건 부정하기 어렵다.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지점에서 사람들은 더 깊이 빠져드니까.
상상은 자유, 그리고 당신의 선택
그렇게 영상을 몇 편 이어보다 보니 어느새 새벽 세 시를 훌쩍 넘겼다. 이젠 정말 자야 할 것 같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 휴대폰을 끄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려다, 거실 창문 너머 깜깜한 밤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본다. 지상과 정반대로, 저 우주 공간은 텅 비어 있으면서도 무한히 넓다고 한다. 그걸 생각하면, 지구 내부에 뭔가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다시 슬며시 고개를 든다.
얼어붙은 북극해를 뚫고 들어가면 갑자기 따뜻한 공기가 뺨을 스치고, 빛나는 숲이 펼쳐진다. 어느 언덕 너머, 샴발라의 황금빛 돔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실제로는 맨틀이 흐르고, 지구 내부 온도가 몇천 도에 이른다. 티베트 설산을 뒤져도 문명의 흔적은 커녕 산사태와 눈보라에 시달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니 지금 당장 배낭을 메고 “지하 세계를 찾으러 간다”고 나서는 건 다소 무모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가능성’ 같은 게 마음 어딘가에 남는다. 어쩌면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차원 어딘가에 전설의 도시 '샴발라'가 숨겨져 있을지도 그리고 간절히 바란다면 누군가 그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런 상상은 점점 커진다. 그 세계가 허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믿고 싶어진다. 언젠가 열릴 것 같은 문 뒤에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모험이 펼쳐져 있을 것 같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러니 이 환상은 당장 깨부수기보다는 마음속 어딘가 깊이 간직해두자. 문득 일상에 지쳐버린 어느 날, 다시 펼쳐보면 좋으니까. 그리고 누가 아는가. 정말로 그 문이 열리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면, 나는 마침내 전설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꿈꾸어왔던 세계를 직접 마주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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