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내 어린 시절을 흔든 그날 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은 TV 앞에 모여 WWF 레슬링을 보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날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WWF Pay Per View의 짜릿함에 비할 수는 없었다. PPV는 정규 방송 채널이 아닌, 별도로 시청료를 지불해야 볼 수 있는 특별 방송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극장 개봉 영화를 IPTV로 구매해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PPV 한 편의 가격은 약 $50.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우리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몇 주 전부터 용돈을 아껴 쓰고, 때로는 집안일을 도와 부모님께 특별 수당(?)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힘겹게 모은 돈으로 PPV를 주문하고, 피자까지 곁들이는 날은 그야말로 축제와 다름없었다. WWF PPV가 열리는 날은, 마치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앞둔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친구들과 누가 이길지, 어떤 기술이 나올지 열띤 토론을 벌이며 엄청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르곤 했다.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레슬링을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주로 친구 집에서 모여 PPV를 보았다. 캐나다에서 자란 나에게 WWF 레슬링은 그만큼 큰 의미였고, 특히 브렛 "히트맨" 하트는 캐나다 전체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프로레슬링 계의 웨인 그레츠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캐나다 하키 영웅, 웨인 그레츠키처럼 브렛 "히트맨" 하트는 우리에게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선 국민적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1997년 11월 9일, 몬트리올에서 열린 Survivor Series. 브렛 하트와 숀 마이클스의 대결은 단순한 경기를 넘어, 프로레슬링 역사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 되었다. 바로 "몬트리올 스크류잡", 그 충격적인 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경기 전개와 나의 충격
경기가 시작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브렛과 숀은 마치 짠 것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몰아붙였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치 자신이 링 위에 있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몸을 뒤틀었다. 그런데 경기가 중반을 넘어서자,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고, 브렛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장면이 나왔다. 숀이 브렛에게 샤프슈터를 걸었고, 심판 얼 헤브너는 갑자기 경기를 종료시켰다. 브렛은 항복한 적이 없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TV 화면에는 분노에 찬 브렛이 빈스 맥마흔에게 침을 뱉는 장면이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마치 잘 짜인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어린 나는 그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친구들과 밤새도록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누구도 명확한 답을 알지 못했다. 그저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라는 막연한 불안감만이 가슴속에 남았다. 마치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닥친 첫 번째 배신, 그것이 바로 '몬트리올 스크류잡'이었다.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배경: 보이지 않는 갈등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날 밤의 사건 뒤에 숨겨진 복잡한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 WWF는 WCW라는 강력한 경쟁자에게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WCW의 수장 에릭 비숍은, 테드 터너; 미국의 미디어 재벌의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WWF의 스타들을 빼가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브렛 하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비숍은 브렛에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거액의 계약을 제안했다. 겉보기엔 브렛은 WWF를 떠날 이유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WWF의 수장 빈스 맥마흔은 달랐다. WWF의 재정 상태는 좋지 않았고, WCW의 공격적인 투자에 맞서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빈스는 브렛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WCW가 제시한 금액을 맞춰줄 수 없다. 차라리 그쪽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비록 경쟁사로 보내는 것이었지만, 빈스는 브렛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심지어 이적 협상까지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브렛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WWF에 남고 싶었다. 이곳은 그가 성장한 곳이고, 팬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는 곳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숀 마이클스와의 갈등에 지쳐가고 있었다. 브렛은 결국 WCW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원했다. WWF 챔피언 타이틀을 깨끗하게 반납하고, 팬들에게 멋진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빈스 역시 브렛의 결정을 존중했고, 고향인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Survivor Series에서 타이틀을 넘기겠다고 하는 브렛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숀이었다. 그의 건방진 태도는 여전히 변함없었고, 둘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결국 브렛은, 숀에게 만은 타이틀을 넘길수 없다고 생각했고, 타이틀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사건의 전개: 계획된 배신의 밤
1997년 11월 9일, 몬트리올. Survivor Series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되기 직전, 빈스 맥마흔은 은밀한 회의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는 숀 마이클스, 심판 얼 헤브너 등 소수의 인원만이 참석했다. 빈스는 그들에게 충격적인 계획을 털어놓았다. "브렛이 항복하지 않아도, 경기를 끝내라." 숀과 얼은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 빈스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그날 밤, 링 위에서 벌어진 일은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숀이 브렛에게 샤프슈터를 걸었고, 브렛은 고통스러워했지만 항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심판 얼 헤브너가 종을 울리며 경기를 종료시켰다. 숀 마이클스가 새로운 WWF 챔피언이 된 것이다. 브렛은 그제야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노한 그는 링위에서 빈스에게 침을 뱉고, 숀은 챔피언 벨트를 들고 황급히 링을 빠져나갔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사건 이후: 주요 인물들의 여정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세 남자의 운명은 엇갈렸다. 브렛 하트는 약속대로 WCW로 이적했지만, WWF에서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잦은 부상과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리며, 결국 쓸쓸하게 은퇴를 맞이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그날 밤의 배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였다"라고 회고했다. 빈스 맥마흔은 '악덕 사장' Mr. 맥마흔이라는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스토리라인에 적극 활용하며, WWF를 'Attitude Era'라는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다. 숀 마이클스는 사건 이후 한동안 팬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링 위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며, WWF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남긴 유산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레슬링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각본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팬들에게 큰 혼란을 안겨주었다. 특히 캐나다 팬들에게 빈스와 숀은 여전히 용서받지 못한 존재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WWF에게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빈스는 'Mr. 맥마흔'이라는 악역 캐릭터를 통해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WWF는 WCW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섰다. 'Attitude Era'는 WWF의 황금기로 불리며, 수많은 명장면과 명경기를 탄생시켰다.
논쟁과 음모론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여전히 많은 논쟁과 음모론을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WWF와 브렛 하트가 사전에 합의한 각본이었다고 주장한다. 브렛과 빈스 모두 이 사건을 통해 이득을 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브렛은 WCW에서 더 많은 돈을 받았고, 빈스는 'Mr. 맥마흔' 캐릭터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브렛은 이러한 주장을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는 "나는 빈스에게 배신당했고, 그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빈스의 선택에 대한 윤리적 논쟁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과연 WWF의 존속을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아니면 개인의 신의를 저버린 비열한 배신이었을까?
그 이후의 레슬링 업계
2000년대 초반, WWF와 주도권 경쟁을 했던 다른 메이저 프로레슬링 프로모션: WCW와 ECW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몰락했다. 2001년, WWF는 두 단체를 인수하며 레슬링 업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후 WWF는 WWE로 이름을 바꾸고,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브렛 하트는 WWE로 돌아오지 못하고, 레슬링에서 멀어져 있었다. WCW가 인수되며 브렛의 자리는 더욱 축소되었고, 그는 가족과의 시간에 집중하며 WWF와 거리를 유지했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브렛은 레슬링 역사에서 점점 더 상징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브렛은 마침내 WWE로 복귀했다. 그는 WrestleMania에서 빈스와의 경기를 통해 묵은 감정을 털어냈고, 숀 마이클스와 화해를 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레슬링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인정받았다.
"브렛하트와 숀 마이클스의 화해"
"브렛 하트의 WWE 명예의 전당 헌핵식"
개인적인 Reflection: 어른이 되어 돌아본 사건
어린 시절,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내가 믿었던 영웅이 배신당하는 모습은, 순수했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브렛 하트와 WWF가 상징했던 정의와 페어플레이,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본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어린 시절 느꼈던 단순한 배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빈스 맥마흔의 선택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당시 WWF의 위태로운 상황을 고려하면, 그가 내린 결정이 회사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 빈스 맥마흔, 그들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상처는 레슬링이라는 드라마의 일부였다.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나에게 레슬링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레슬링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각본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팬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선사하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몬트리올 스크류잡'은 그 드라마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였고, 프로레슬링이 단순한 경기가 아닌 감정의 드라마라는 점을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2022년 숀 마이클스와 브렛 하트의 만남 그리고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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