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트리플 H의 왕좌의 게임: WWE를 지배한 전설의 시작 (1부)

OUTNUMBERED 2025. 1. 13. 09:35

트리플 H
트리플 H

 

피와 땀, 함성이 뒤섞인 링. 그곳은 때로는 잔혹한 전쟁터였고, 때로는 눈부시게 화려한 무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훗날 '왕 중 왕'으로 불리게 될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헌터 허스트 헴슬리, 트리플 H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프로레슬러의 성공담을 한참 넘어선다. 끊임없는 자기 단련, 뼛속 깊이 새겨진 승리를 향한 갈망, 그리고 어떤 역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철같은 의지가 만들어낸,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와 같다. 수많은 상처와 패배, 좌절의 순간들 속에서도 오직 레슬링을 향한 불타는 열정 하나로 버텨낸 그는 마침내 링 위를 평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트리플 H는 스테파니 맥맨과의 결혼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레슬링 제국 WWE 권력의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 예상치 못했을 거대한 운명의 이끌림이었다. 장인인 빈스 맥맨은 그에게 든든한 조력자이자 멘토였고, 트리플 H는 특유의 성실함과 비전을 보여주며 장인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추문과 법률적인 문제로 빈스 맥맨이 WWE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도, 장인은 자신의 뒤를 이을 인물로 주저 없이 사위인 트리플 H를 선택했다. 자신의 처남인 셰인 맥맨을 비롯한 경쟁자들을 모두 제친 트리플 H는, 마치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듯, 그렇게 WWE의 새로운 제왕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빈스 맥맨은 든든한 조력자로서 트리플 H를 묵묵히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링 위에서의 전설적인 업적을 넘어, 레슬링 비즈니스 세계까지 장악하며 진정한 "왕 중 왕"으로 우뚝 선 헌터 허스트 헴슬리, 트리플 H. 나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위대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어린 시절, 레슬링과의 운명적 만남: 낯선 캐나다 땅에서 찾은 희망과 소통의 창구

열 살, 어린 나이에 낯선 캐나다 땅을 밟았을 때, 모든 것이 두려움과 생경함 그 자체였다. 언어도, 문화도, 사람들도, 그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홀로 내던져진 어린 나는 지독한 외로움에 휩싸였다.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넬 친구도 없이 그저 겉돌 뿐이었고, 집으로 돌아와도 부모님의 걱정 어린 시선만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렇게 외로움에 허덕이던 어느 날, 마치 운명처럼 TV 속에서 펼쳐지는 레슬링 경기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 관중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찬 링 위에서 거구의 사나이들이 격렬하게 몸을 부딪히고 있었다. 그 순간, 마치 다른 세상의 문이 열린 듯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근육질의 거구들이 서로에게 몸을 날리고, 화려한 기술을 주고받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묘한 흥분과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 안에는 '터프 가이' 스티브 오스틴의 반항적인 카리스마, '쇼스토퍼' 숀 마이클스의 화려한 몸놀림, '히트맨' 브렛 하트의 엄청난 존재감까지, 링 위는 그야말로 영웅들의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무대와도 같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나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링 위의 제왕' 트리플 H였다. 그의 묵직한 파워, 상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그리고 승리를 향한 맹렬한 집념은 어린 나의 심장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마치 링 위의 왕처럼 군림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막연한 동경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WWF "RAW is WAR"
WWF "RAW is WAR"

 

레슬링은 그렇게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로, 내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것은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마법의 열쇠와도 같았다. 레슬링을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는 친구를 사귀는데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레슬러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의 기술에 대해 떠들썩하게 토론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막혀있던 귀와 입이 기적처럼 열리기 시작했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학교는 더 이상 가기 싫은 곳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설레였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할 학교생활은 하루하루가 기대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레슬링은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고, 낯선 이국땅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었다. 매주 TV 앞에 앉아 레슬링 경기를 시청했고, 레슬러들의 이름과 기술을 줄줄 외웠으며, 레슬링 잡지를 사서 모으고, 레슬링 비디오 게임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게 있어 레슬링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일부이자, 낯선 세상에서 발견한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킬러 코왈스키와의 만남: 전설의 조련 아래, 프로레슬러의 꿈을 키우다

킬러 코왈스키
킬러 코왈스키

 

그의 이야기는 19세 소년이 뉴햄프셔 주의 한 헬스장에서 시작된다. 14살 때부터 보디빌딩을 시작하며 탄탄한 몸을 다져온 트리플 H는,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뉴햄프셔 주의 Gold's Gym의 매니저로 일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프로레슬러를 향한 열정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전설적인 파워리프터이자 프로레슬러였던 테드 아시디를 만나게 된다. 그는 트리플 H의 잠재력을 단번에 알아보고 프로레슬링 입문을 권유했다.

"넌 신체적 조건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열정이 있어. 프로레슬러로서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아시디의 이 말은 젊은 트리플 H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그는 전설적인 레슬러 킬러 코왈스키가 운영하는 레슬링 훈련소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코왈스키 훈련소는 엄격한 규율과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매일같이 녹초가 될 때까지 훈련해야 했고, 코왈스키의 눈은 매서웠다. 트리플 H는 이곳에서 프로레슬링의 기본기를 다지는 동시에, 링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인한 정신력을 길렀다.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코왈스키는 내게 프로레슬링 그 이상을 가르쳐준 스승"

 

이라고 회고했다. 코왈스키는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프로레슬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르쳤다.

"링 위에서는 네 자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코왈스키의 가르침은 훗날 트리플 H가 링 위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데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다.

인디 단체 시절: '테라 라이징' 그리고 '장 폴 레베크', 성장을 위한 담금질

테라 라이징
테라 라이징

 

킬러 코왈스키의 훈련소에서 피나는 노력 끝에, 트리플 H는 1992년 3월, '테라 라이징'이라는 링 네임으로 인디 단체 IWF(International Wrestling Federation)에서 토니 로이를 상대로 감격적인 데뷔전을 치른다. 초기에는 플라잉 엘보 드롭을 피니시 기술로 사용했고, IWF에서 매드 독 리차드를 꺾고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는 등, 데뷔 초부터 예사롭지 않은 실력을 선보였다. '벨트 컨텐더'라는 팀으로 활동하며 IWF 태그팀 챔피언에도 등극, 인디 무대를 평정해 나갔다. 이 시기 그는 주로 브라이언 암스트롱, 페리 새턴과 같은 선수들과 경기를 가졌고, 특히 1994년 1월 25일, 뉴욕의 한 경기장에서 압둘라 더 부처를 상대로 IWF 헤비웨이트 타이틀 방어전을 치러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를 지켜냈다. 그는 링 위에서 강렬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을 선보이며, 인디 단체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후 그는 동부 해안의 여러 인디 단체를 돌며, 더 큰 무대를 향한 꿈을 키워나갔다.

WCW의 부름, 그리고 시련: 좌절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

WCW 시절 Triple H
WCW 시절 Triple H

 

더 큰 무대를 향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트리플 H는 1994년, 당시 WWF와 함께 프로레슬링 업계를 양분하던 메이저 단체 WCW와 1년 계약을 체결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게 된다. WCW 데뷔전에서 그는 키스 콜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단숨에 WCW 수뇌부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WCW에서 그는 '테라 라이징'이라는 링 네임으로 활동하며, 릭 스팀보트에게 첫 패배를 맛보기도 했지만, 알렉스 라이트와의 대립을 통해 스타케이드 1994에 출전하는 등 꾸준히 경험을 쌓았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피니셔 '페디그리'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다. WCW에서 그는 래리 지비즈코를 상대로 W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십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패배하며, 메이저 단체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또한, 그는 훗날 WWE에서 함께 활동하게 될 로드 독과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WCW에서의 그의 활동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장 폴 레베크'라는 새로운 링 네임과 프랑스 귀족 기믹을 부여받았지만, 이는 그의 강렬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고, 팬들의 반응 역시 신통치 않았다. 결국 1년 만에 WCW를 떠나게 된 그는, 이 시기를 통해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더욱 강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2. WWF/E: 링 위의 귀족, 왕 중 왕으로 등극하다

링 위의 귀족, 헌터 허스트 헴슬리: WWF 입성, 새로운 시대의 서막

"트리플 H의 WWF 데뷰"

 

 

1995년, 트리플 H는 마침내 WWF(현 WWE)에 입성하며, 그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헌터 허스트 헴슬리(Hunter Hearst Helmsley)'라는 새로운 링 네임과 함께, 코네티컷 출신의 오만한 귀족 기믹을 선보인 그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링 위를 누비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듀크 "더 덤스터" 드로시, 밥 할리와 같은 중견급 선수들과 대립을 맺으며 인지도를 쌓았고, 특히 페이탈 포 웨이 일리미네이션 경기에서 얼티밋 워리어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세이블을 대동하면서 여성 매니저를 대동하는 전통을 세우기도 했다.

"헌터 허스트 헴슬리, 이제부터 나의 시대가 시작된다."

 

WWF 데뷔 당시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포부는, 앞으로 펼쳐질 그의 황금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새로운 스타 탄생을 지켜보는 듯한 설렘을 느끼게 해준 그의 WWF 데뷔는, 수많은 레슬링 팬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 역시 그의 화려한 등장에 매료되어, 앞으로 그가 써 내려갈 전설의 서막을 기대하며 가슴 벅차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커튼 콜 사건: Kliq의 우정, 그리고 위기

"The Kliq"
"The Kliq"

링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슈퍼스타들에게도, 링 밖에서의 끈끈한 우정은 존재했다. 트리플 H에게는 숀 마이클스, 케빈 내쉬, 스캇 홀로 구성된 Kliq이 바로 그러한 존재였다. 그들은 링 위에서뿐만 아니라, 링 밖에서도 깊은 유대감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던 1996년 5월 19일, 레슬링 역사에 길이 남을, 이른바 '커튼 콜(Curtain Call)'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WCW로 이적을 앞두고 있던 케빈 내쉬와 스캇 홀은 WWF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경기 후 Kliq 멤버들은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링 위에 모였다. 문제는, 당시 챔피언이었던 숀 마이클스(선역)와 도전자였던 케빈 내쉬(악역), 그리고 내쉬의 친구 스캇 홀(악역)과 홀의 친구 헌터 허스트 헴슬리(악역)가 한 링 위에서 포옹을 나누며, 선역과 악역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것이다. 이는 각본에 없던, Kliq 멤버들의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함께 동고동락한 친구들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이는 WWF가 철저하게 고수해온 선역과 악역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WCW로 이적 예정이었던 내쉬와 홀을 제외하고, 숀 마이클스는 당시 WWF 챔피언이었기에 징계를 피할 수 있었지만, 트리플 H는 한동안 중요한 경기에서 배제되는 등, 사실상 모든 징계를 떠안아야 했다. 당시 TV를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그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진한 우정이 부럽기도 했다.

"그때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후회는 없어."

"커튼 콜 사건"
"커튼 콜 사건"

 

훗날 커튼 콜 사건에 대한 회상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말처럼, 트리플 H는 자신의 신념을 지킨 진정한 남자였다.

D-Generation X: 반항과 도발, 애티튜드 시대의 아이콘

커튼 콜 사건으로 인한 징계는 오히려 트리플 H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1997년, 숀 마이클스와 손을 잡은 그는, 8대 WWF 유러피언 챔피언에 오르며, 더욱 악랄한 악역 기믹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브렛 하트와의 대립 중 숀 마이클스가 "degenerate(타락한 놈)"이란 단어를 사용했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거침없는 악동 스테이블 **'디 제네레이션 엑스(D-Generation X, DX)'**를 결성하게 된다.

"우리는 DX다. 우리는 규칙을 따르지 않아. 우리가 곧 규칙이다!" - DX 데뷰 영상

 

 

DX 결성 당시 인터뷰에서 숀 마이클스가 외친 이 말은, 기성세대에 반항하던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DX의 흉내를 내곤 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We got two words for you! Suck it!"을 외치며 숀 마이클스와 트리플 H의 등장 포즈를 따라 하는 건 우리 사이에서 엄청난 유행이었다. 교실 한 구석에서 친구들과 함께 DX의 포즈를 따라 하며, 마치 우리가 그들이 된 것처럼 소리 지르던 그 시절은 이제는 아련한 추억 속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DX였고, 그들의 반항적인 모습에 열광했다.

차이나: 든든한 조력자, 그리고 뜨거운 러브 스토리

"Chyna" 차이나
"Chyna" 차이나

 

DX의 거침없는 악동 행보에 든든한 지원군이 등장했으니, 바로 '9th Wonder of The World'라고 불리던 차이나(Chyna)였다. 여성 보디빌더 출신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던 차이나는, 당시 여성 레슬러로서는 보기 드문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1997년 2월 16일, 인 유어 하우스 13: 파이널 포에서 골더스트와 대립 중이던 트리플 H를 도우며 WWF에 데뷔한 차이나는, DX의 여성 멤버이자 트리플 H의 보디가드 역할을 맡아, 남자 선수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링 위를 장악했다. 특히, 트리플 H와 차이나의 강력한 케미스트리는 링 위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트리플 H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마치 흑기사처럼 등장하여 그를 보호하는 차이나의 모습은 정말 든든해 보였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나를 포함한 수많은 팬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링 위에서의 러브라인은 현실로 이어졌다. 그들이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치 내가 연애하는 것처럼 설레였던 기억이 난다.

"차이나는 내 인생 최고의 여자 중 하나였다."

차이나와 트리플 H
차이나와 트리플 H

 

훗날 인터뷰에서 차이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낸 트리플 H의 모습은, 링 위에서의 악동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DX, 애티튜드 시대를 평정하다: WCW와의 전쟁, 그리고 거침없는 도발

DX는 반항과 도발을 일삼는 악동 기믹으로, 1990년대 후반 WWF의 애티튜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과도 같았다. 거침없는 언행과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수많은 팬들을 열광시켰고, 그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우리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러 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DX, WCW Monday Night Nitro 습격사건
DX, WCW Monday Night Nitro 습격사건

 

애티튜드 시대 당시 인터뷰에서 트리플 H가 외친 이 말은, 당시 WWF의 변화를 주도하던 DX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1998년 4월 27일, DX가 군용 지프차를 개조한 탱크를 몰고 당시 경쟁 프로모션이었던 WCW의 Monday Night Nitro가 생방송이 진행되는 노퍽 스코프 경기장으로 쳐들어간 사건은, 프로레슬링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WCW를 조롱하고, 전쟁을 선포하며, 도발적인 행동을 일삼는 그들의 모습은, 당시 치열했던 먼데이 나잇 워(Monday Night War)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TV를 통해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DX의 대담함에 전율을 느꼈다. 그들의 파격적인 퍼포먼스, TV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에너지는, 나를 포함한 전 세계 레슬링 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외에도 DX는 WCW 본사가 위치한 CNN 센터에 난입하거나, WCW를 조롱하는 수많은 세그먼트를 통해, 먼데이 나잇 워에서 WWF가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단순한 악역 스테이블을 넘어, 시대의 흐름을 바꾼,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3. The Game: 링 위의 지배자, 진화를 거듭하다

숀 마이클스의 은퇴, 그리고 The Game의 탄생: 새로운 시대의 주역

영원할 것 같았던 DX의 시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1998년 로얄럼블에서 숀 마이클스가 심각한 등 부상을 당했고, 결국 레슬매니아 14를 끝으로 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DX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DX의 해체는 너무나 아쉬웠지만, 트리플 H는 더욱 강렬한 카리스마를 장착한 'The Game'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99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The Game' 기믹은, 그가 링 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하고 영리한 선수임을 상징했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다. 나는 '더 게임'이고, 이 게임의 규칙은 내가 정한다."

 

 

더 게임 기믹으로 변신 후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포부는, 앞으로 펼쳐질 그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듯했다. 새로운 등장 음악 'My Time',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가 된 물 뿜기 세리머니와 슬레지 해머는 The Game의 카리스마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특히, 경기 시작 전 링 위에서 물을 뿜어내는 장면은, 마치 맹수가 사냥을 시작하기 전 포효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나를 포함한 전 세계 팬들을 열광시켰다. 슬레지해머를 들고 나올때의 경기장내의 함성은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할 정도로, The Game의 등장은 언제나 압도적이었다.

14번의 월드 챔피언: 전설적인 대립, 그리고 챔피언 등극

The Game으로 거듭난 트리플 H는 1999년 8월 23일, 믹 폴리를 꺾고 마침내 WWF 챔피언에 등극하며, 14번의 월드 챔피언 기록을 향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이 게임의 정점에 섰다."

WWF 챔피언 등극
WWF 챔피언 등극

 

첫 챔피언 등극 후 인터뷰에서 밝힌 그의 포부는, 앞으로 펼쳐질 그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믹 폴리와의 대립 (2000): 트리플 H는 믹 폴리가 창조해낸 다양한 페르소나(캑터스 잭, 맨카인드, 듀드 러브)들과 치열한 대립을 펼쳤다. 특히, 2000년 로얄럼블에서의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와 노 웨이 아웃에서의 헬 인 어 셀 경기는, 두 선수의 처절한 혈투를 생생하게 보여준 명경기였다. 특히, 헬 인 어 셀 경기에서 트리플 H가 캑터스 잭에게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리우는 잔인한 공격을 퍼부으며 승리를 거두는 장면은, 그의 잔인함과 동시에 승리를 향한 지독한 집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과의 대립 (1999, 2001): 트리플 H는 스톤 콜드와도 역사적인 대립을 이어갔다. 1999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는 스톤 콜드를 차로 들이받는 악역의 정점을 찍었고, 2001년 노 웨이 아웃에서는 쓰리 스테이지 오브 헬 매치에서 스톤 콜드를 꺾고 자신의 강력함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스톤 콜드와의 대립은 언제나 나를 흥분시켰다. 그들의 경기는 마치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트리블 H vs 스톤 콜드
트리블 H vs 스톤 콜드

 

더 락과의 대립 (2000, 2002): 더 락과의 라이벌 구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2000년 저지먼트 데이에서의 아이언맨 매치에서 트리플 H는 더 락을 꺾고 WWF 챔피언에 등극했고, 2002년에는 더 락에게 WWE 통합 챔피언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더 락과의 치열한 대립은 나에게는 마치 세기의 라이벌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그들의 경기는 언제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의 연속이었다.

트리플 H vs 더 록
트리플 H vs 더 록

 

이 외에도 크리스 제리코, 커트 앵글, 크리스 벤와, 숀 마이클스 등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들과 수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내며, 트리플 H는 명실상부 WWE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그는 2002년 로얄럼블 우승을 차지했고, 레슬매니아 18에서 크리스 제리코를 꺾고 WWE 통합 챔피언에 등극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후에도 스캇 스타이너, 케인, 골드버그, 숀 마이클스, 랜디오턴, 바티스타, 제프 하디, 존시나, 에지등 수많은 선수들과 대립하며 2009년까지 13번의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며 WWE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갔다.

Evolution: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결합, 링 위의 지배자들

2002년, 트리플 H는 '네이처 보이' 릭 플레어, 그리고 WWE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피 랜디 오턴, 바티스타와 함께 Evolution이라는 강력한 스테이블을 결성한다. 과거(릭 플레어), 현재(트리플 H), 미래(랜디 오턴, 바티스타)를 상징하는 멤버 구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팬들의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우리는 Evolution이다. 우리는 레슬링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다."

"Evolution" 에볼루션
"Evolution" 에볼루션

 

Evolution 결성 당시 인터뷰에서 트리플 H가 밝힌 포부처럼, 그들은 링 위를 지배하며 WWE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2003년 아마게돈에서는 RAW의 모든 챔피언십(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을 독점하며, 그 위세를 떨쳤다. 노련한 베테랑 릭 플레어의 경기 운영, 무자비한 챔피언 트리플 H의 카리스마, 그리고 젊은 피 랜디 오턴과 바티스타의 패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Evolution은 그야말로 '완전체'와 같은 강력함을 뽐냈다. 그들은 링 위에서뿐만 아니라, 링 밖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WWE를 자신들의 발아래 두었다. Evolution은 나에게는 마치 완벽한 팀처럼 보였고, 그들의 거침없는 행보에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Evolution의 붕괴: 권력욕, 그리고 배신, 갈등의 씨앗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Evolution의 지배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4년, 바티스타는 트리플 H의 추천으로 로얄럼블에 불참하는 대신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도전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트리플 H는 그 기회마저 잃었고, 바티스타는 훗날 인터뷰를 통해 이때부터 그에게 반감을 품었다고 밝혔다. 권력과 챔피언십을 향한 내부 갈등은, 결국 Evolution의 붕괴를 불러왔다. 특히, 2004년 섬머슬램에서 랜디 오턴이 크리스 벤와를 꺾고 최연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자, 트리플 H는 그를 시기하며 배신을 획책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동료였던 랜디 오턴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트리플 H의 모습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2005년 로얄럼블에서는 바티스타가 우승을 차지하며, 레슬매니아에서 월드 챔피언에 도전할 권리를 얻었다. 트리플 H는 바티스타를 회유하려 했지만, 바티스타는 더 이상 그의 부하가 아니었다.

"이제 내 시대가 왔다. 그리고 당신은 내 길을 막을 수 없다."

바티스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바티스타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바티스타는 트리플 H에게 도전장을 던졌고, 레슬매니아 21에서 그를 꺾고 새로운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했다. Evolution의 붕괴는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영원한 동료는 없다는 것, 권력 앞에서는 어제의 동지도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자신을 믿고 따르던 동료들을 무참히 배신하는 트리플 H의 모습은,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진실의 끝이었을까?

 

링 위의 절대 권력을 향한 그의 야망은, 이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링 밖에서도 그 야망을 펼칠 수 있는, WWE 그 자체를 향해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맥맨'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지금까지 트리플 H가 써 내려온 위대한 여정의 1막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2막은 더욱 거대하고, 더욱 예측 불가능한 전개가 될 것이다. 과연 '왕 중 왕'을 향한 그의 거침없는 질주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그의 이야기는 2부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