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4부) 역사상 가장 치열하게 검을 휘둘렀던 전설의 검객들 - 슈발리에

OUTNUMBERED 2025. 3. 29. 15:08

조제프 불로뉴 "슈발리에"

18세기 프랑스 "생조르주 기사"로 불린 흑인 혼혈 기사이자 음악가 "조제프 불로뉴."
18세기 프랑스 "생조르주 기사"로 불린 흑인 혼혈 기사이자 음악가 "조제프 불로뉴."

 

18세기 프랑스, 신분이 곧 운명을 결정하던 암울한 시대. 조제프 불로뉴(1745~1799)는 신분과 인종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넘어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위치에 올라섰다. 백인 귀족 아버지와 흑인 노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태생부터 신분과 인종이라는 견고한 벽을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생조르주 기사(Chevalier de Saint-Georges)’라는 작위는 그에게 귀족의 지위를 안겨주었지만, 흑인 노예였던 어머니의 출신 성분은 그를 언제나 ‘혼혈’이자 ‘노예의 아들’로 규정짓게 했다. 그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그를 "검은 피부의 아폴론"이라 칭송했지만 그 찬사 속 내면을 들여다보면 감탄과 차별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
 
불로뉴는 카리브해 과들루프의 대농장에서 노예의 아들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귀족 아버지의 결단으로 자유를 얻고 파리로 건너온 그는 귀족 자제로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펜싱의 대가 라 보엘, 작곡가 고세크, 클라리넷 명인 베렌게르 등 그가 사사한 스승들은 모두 각 분야의 거장이었다.
 
그의 천재성은 일찍부터 빛을 발했다. 1758년, 13세의 나이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펜싱 대회 청소년부에서 우승하며 백인 중심의 귀족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766년에는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악명 높던 펜싱 고수 알렉상드르 피카르를 단 3초 만에 꺾는 결투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승리는 단순한 기술의 우월함이 아닌, 당시 사회를 짓누르던 인종적 편견에 대한 통렬한 반격이었다.

 

토머스 롤런드슨의 수채화 <헨리 안젤로의 펜싱 아카데미>.
토머스 롤런드슨의 수채화 <헨리 안젤로의 펜싱 아카데미>.

 

그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울려 퍼졌다. 영국의 챔피언 헨리 앵글로스와의 맞대결(1787), 벨기에 공작 부인의 호위무사 선발전(1778) 등 굵직한 승부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유럽 최강의 검객"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검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그는 직접 '흑인 연대(Légion St.-Georges)'를 조직해 흑인과 혼혈 병사 천여명을 이끌고 전장에 나섰다. 1792년 리일에스카르 전투에서는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며 뛰어난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다.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고, 파리 국립 오페라단 음악 감독 후보에도 올랐지만 인종차별의 벽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콩세르 데자마퇴르'(Concerts des amateurs: 아마추어 교향악단) 를 이끌며 작곡과 지휘를 병행했고, 로코코 양식에 카리브 리듬을 녹여낸 그의 작품은 오늘날 '크레올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불로뉴는 시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을 살았다. 왕비의 무도회에 초대받는 '예외적인 흑인'이었지만, 백인 음악가들에게는 '원숭이 지휘자'라는 모욕을 감수해야 했다. 펜싱 경기장에서는 영웅이었지만, 극장 무대에서는 출연이 금지되었고, 혁명을 위해 싸웠지만 공화국 수립 후에는 '과도한 야망'을 가진 인물로 의심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검과 음악, 전쟁과 예술, 찬사와 배제 사이에서 그는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오늘날에도 그의 이름은 생조르주 음악제, 영화 '슈발리에' 등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회자된다. 조제프 불로뉴, 그는 단순한 검객이나 작곡가가 아니었다. 그의 삶은 편견에 맞서 싸운 한 인간의 투쟁이었다.

 

2022년에 공개된 조제프 불로뉴의 전기영화 &quot;슈발리에&quot;
2022년에 공개된 조제프 불로뉴의 전기영화 "슈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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